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아침논단] 관용과 법치가 선진강국의 비결

 

에이미 추아(Amy Chua) 미국 예일대 법대 교수가 작년에 펴낸 책 ‘제국의 미래(Day of Empire)’가 구미 지성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책은 고대 페르시아제국부터 로마제국은 물론, 동양권의 중국과 몽골제국을 포함해 대영제국과 현대의 미국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흥망성쇠를 독창적 관점에서 흥미진진하게 풀어 나간다.

이 책의 저자가 중국계 여성이라는 점과 그녀의 남편 역시 재작년에 ‘살인의 해석’이라는 추리소설을 펴낸 동료 예일대 법대 교수라는 점도 흥미로움을 더해준다.

추아 교수의 주장은 명쾌하고 간단하다. 역사상 세계적 패권국가로 성장한 나라들은 하나같이 ‘관용(Tolerance)’ 정책을 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관용이란 현대적 의미의 ‘평등’과 ‘인권’에 기초한 관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전략적 관용을 말한다. 즉, 세계를 제패했던 초강대국(Hyperpower)으로 성장한 나라들은 피정복민의 고유한 문화와 관습, 종교를 보존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서 능력이 뛰어난 자를 발탁해 군대는 물론 기술자, 과학자, 의사, 그리고 고위 관료로 중용함으로써 그들의 반발을 무마시킬 수 있었고, 나아가 로마는 시민권까지 부여함으로써 그들로부터 자발적인 충성심을 이끌어 내 수백 년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번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제국주의적 야심을 지녔지만 불관용 정책으로 인해 세계 제국 건설에 실패한 예가 있다.

바로 나치 독일과 일본이다. 이들은 자민족 우월주의에 입각해서 인종적 차별정책을 철저하게 고수함으로써 단기적으로는 내부적 단결을 통한 제국 확장의 원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이들의 무자비한 인종차별정책은 점차 피정복민의 극렬한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이 두 나라는 세계적 초강대국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단명하고 말았다.

추아 교수는 초강대국으로서 오랜 세월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관용만 있어서는 안되고, 로마제국처럼 피정복민이 스스로 제국에 충성하고 진심으로 로마시민이 되고 싶어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통일된 정치적 정체성을 창출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즉, 제국 시민 전체를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관념적인 접착제(Ideological Glue)’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제국의 경우 바로 ‘시민권’이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제국 시민 전체를 차별 없이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관념적 접착제는 다름 아닌 ‘법치’ 이념이다.

지속적인 ‘관용정책’의 근간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평등한 시민권 등의 정치적 정체성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이념적 틀이 바로 ‘법치’인 것이다. 이 책이 시사적이고 가치 있는 이유는 책의 교훈이 비단 제국뿐만 아니라 한 나라가 선진 강국이 되기 위한 조건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국만큼 다양하고 편차가 크지는 않겠지만 우리도 적지 않은 문화적, 종교적, 지역적 다양성을 아우르고 있다. 이를 통합하여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혈연, 지연, 학연, 종교 등을 포용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 나가가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국가로서 통일된 정치적 정체성을 창출해 내기에 유리한 조건에 있으면서도 그동안 연고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구태를 답습해 왔다.

오죽하면 ‘고소영’이니 ‘청Y대’니, ‘육법당’ 등의 신조어가 생겨났겠는가? 1996년부터 2007년까지 세계은행이 발표한 정부경쟁력 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정치적 안정성과 정부 효율성 면에서는 꾸준히 향상되고 있으나, 법치 지수나 부패방지 지수에 있어서는 80점에 못미치는 낮은 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나 일본, 싱가포르, 독일 등의 선진국이 80점을 훨씬 상회해 90점 안팎의 높은 점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과 극명히 대비된다.

이처럼 선진국의 진입문턱에서 계속 좌절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관용과 법치를 뒤로 한 채 연고주의를 앞세우는 고질적 관행 때문이라고 본다.

이름 없는 지방대학을 나와도 고위 임원, 고급 관료가 될 수 있고, 특정 신앙, 특정 지역의 배경을 가진 사람도 능력이 뛰어나다면 얼마든지 중용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가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정한 법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귀속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엄정한 법치의 확립이 긴요하다.

그래야만 모든 사람이 충성을 다해 일해 볼 만한 나라라는 생각을 지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디 ‘제국의 미래’에서 ‘한국의 미래’를 읽어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