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아침논단] ‘록본기 힐즈’ 위기에 대한 日 대처법

 

지난 주 일본에 다녀왔다. 한 달 전 일본행을 준비할 때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환율이 치솟아, 떠나는 걸음이 몹시 무거웠다. 지난 목요일 원·엔화 환율이 1,600원을 넘어 꼭지점에 다달았던 날, 일본 친구로 부터 전문 투자가나 투기꾼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나서 한화를 사들이는 바람에 일본의 은행들에서 한화가 씨가 말랐다는 소문을 들었다.

추석 연휴 끝인 9월 16일 ‘리먼 브라더스’라는 미국의 투자은행이 파산신청을 했다는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이 은행이 15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미국에서 5번째 안에 드는 거대 은행이라는 사실이나, 더구나 이 은행의 파산 사건이 세계경제와 특히 우리나라에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정확히 가늠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세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정책을 쏟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월 한 달 동안 각종 지수와 가격들은 대공황이 시작되던 1929년이나 일간최대낙폭의 블랙먼데이가 끼어 있다는 1987년보다도 더 큰 폭으로 추락하였다. 그동안 언론 지면에서 떠돌던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 금융위기라는 단어들이 이제 실체를 띄며 우리의 삶 속으로 고통스럽게 파고들고 있다.

1980년대에 지루한 경기침체를 경험한 일본 사람들은 이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떠한 불황도 비켜 간다는 소위 ‘수퍼 리치’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해서, 록본기 힐즈를 찾아가 봤다. 록본기 힐즈는 2003년 4월 개관 시 부터 도심재개발을 통한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사례로 널리 알려지며, 전 세계 관광객과 도심개발 관련 전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코레일’이 13만평이 넘는 차량공장 부지를 이용한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의 모델로 지목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록본기 힐즈는 개발 기간만 17년의 세월이 걸렸고, 민간시행자인 ㈜모리빌딩 사장이 400여명의 지주들을 수십, 수백 번 만나서 개발을 성사시킨 개발일화로도 유명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록본기 힐즈가 여러 측면에서 일본 자본주의의 성공의 심볼로 여겨져 왔다는 점이다. 록본기힐즈에는 야후재팬을 비롯한 라쿠텐, 라이브도어 등 IT 벤처기업과 골드만 삭스와 같은 외국계 투자은행들, 호텔 및 유명 브랜드샵과 고급 레스토랑들이 포진해 있어 입주 자체가 성공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힐즈의 고급맨션에는 벤쳐사업가와 외국계 금융인들, 연예인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힐스 족’이라고 불리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록본기 힐즈 레지던스의 침실 3개짜리 아파트의 월세가 191만 엔(약 2천만원)에 이르고, 롯폰기 힐즈의 상징인 모리타워 내 임대료는 월 2,500만엔 (2억5천만원)에 이른다고 하니,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승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곳 록본기 힐즈가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버블 붕괴의 급류에 휘말려 있었다. 특히 록본기 힐즈에 사무실을 둔 유명 기업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떠나가면서 ‘힐즈의 저주’라는 말까지 떠돌고 있다고 한다. 2006년에 일본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선망의 대상이던 ‘라이브 도어’사의 호리에 사장이 탈세사건으로 체포되었고, ‘무라카미 펀드’의 무라카미 사장도 일본방송주식을 내부거래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또 ‘굿윌’ 그룹은 불법적 요소가 들통이 나서 결국 인력파견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난 9월 1,50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이 곳에 입주해 있던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힐즈족’이라는 유행어와 함께 양극화시대에 벼락부자, 신흥부자들의 아성이던 록본기 힐즈가 ‘버블 붕괴’의 상징으로 바뀌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사회의 놀라운 힘은 곧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었다. 비록 록본기 힐즈가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일본인들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떠한 위기가 닥치더라도 중장기 미래를 생각하며 꾸준히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며, 혁신해 나가는데 일본의 저력이 있다. 위기에 주저앉아 아우성을 치는 대신 시오도메, 신주꾸 부도심, 동경 임해지 개발 사업 등 제2, 제3의 록본기가 될 수 있는 수 많은 사업들이 차질 없이 추진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세계적 금융위기의 쓰나미에서 고통을 겪게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획됐던 각종 사업들을 멈춰서는 안 된다.

차분하게 보다 더 원대한 미래를 위한 사업들을 준비하고, 철저하고 꾸준하게 시행해 나가는 것만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