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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 공부시간 총량보다 중요한 것

 

학교에서 밤 10시까지 학생들을 붙잡고 있으면 -우리 교육에 대한 앨빈 토플러의 계산대로 하루 15시간 동안 ‘사생결단’으로 가르치면- 우리 교육은 성공하는 걸까? 학생들은 빛나는 지식을 갖추게 되고, 우리나라 장래는 그만큼 굳건해질까?

열심히 가르치는 일은 칭찬받아 마땅하고 그런 학교, 그런 선생님들을 탓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온 나라가 그렇게 돼야 할 것처럼 얘기하거나 그런 사례에서 공교육의 답을 찾으려는 견해는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않다.

밤낮없이 많이 가르치는 학교에서 성공사례를 찾으려는 시각으로는 우리 교육의 기본방향을 정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야간학습까지 챙기는 선생님은 ‘캡틴’”, “내 제자를 학원에 보낼 순 없었어요” 같은 기사가 그런 사례다.

국가학업성취도평가 결과공개 때도 이런 기사가 난무했다. “학교간 무한경쟁 불붙었다”, “놀라운 전북 임실... 오후 6시까지 방과후학교 운영, 방학 중에도 맞춤형 교육”.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그런 시각에 힘을 실었다.

그는 지난 3월 10일,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미국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보다 매년 학교에서 한 달 정도를 덜 보낸다”, “그렇게 해서는 21세기 경제에 대비할 수 없다”, “한국 아이들이 교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오바마 ‘한국이 하는데 우린 왜 못해?’”, 언론은 그의 발언을 대서특필했지만, 우리나라 학자들이나 교원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과 우리의 교육방법이나 교육의 질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사교육비를 줄이고 공교육이 사교육을 이기도록 하자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지난해 총사교육비는 전년대비 4.3% 증가한 20조9000억원으로, 이는 정부가 교육분야에 투자한 총 재정규모가 40조원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양이며, 학생 1인당 월평균으로도 23만3000원이나 됐기 때문이다.

이에 서울교육청에서는 ‘사교육비 줄이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지금까지 예체능 중심이던 초등학교 ‘방과후학교’를 학원처럼 연중무휴로, 소규모·수준별 주요 교과(국어·영어·수학) 중심으로 바꾸어 학원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춘 학교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이제는 초등교육의 기본적 성격조차 유보하고 그야말로 ‘초강수’를 동원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여러 사교육 대책도 정부가 회의적 시각으로 추진한 적은 없고, 그럼에도 사교육비는 계속 늘어나 단 한 번도 시원한 결과를 나타낸 적이 없는데, 이번에도 실패하면 그 부작용을 어떻게 하려는지 이제는 초등학교까지 국·영·수 중심의 방과후학교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최근의 신문기사나 사교육 대책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기본방향이나 기준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 국민들도 알고 언론도 잘 알고 있는 그런 방향, 그런 기준이 있기는 한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앨빈 토플러는 지난해 연말 국회 초청 연설에서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교육으론 미래가 없다”면서 우리의 교육시스템 자체를 다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산업사회 소품종 대량생산형 교육의 특징을 ‘시간엄수’와 ‘복종’, ‘기계적 반복’으로 규정한지도 벌써 30년이나 됐는데, 우리는 아직도 그 틀을 전혀 벗어나지 못하여 그처럼 뼈아픈 지적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그 질곡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우리 교육의 기준이나 방향설정의 계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私교육은 死교육”이라면서 무시험 선발을 공교육 회생의 길로 내세워 온 나라를 일시에 ‘입학사정관 열풍’으로 몰아넣은 KAIST 서남표 총장에게 물어보면 좋을 것이다.

그가 “밤늦게까지 공부시키자”, “초등학교부터 국·영·수 중심으로 가르치자”고 할 리는 없다.

또한 그의 관점이라면, 교사들에게 요구되는 노력은 기준 이상의 수업시간이 아니라 교육의 전문성 신장을 위한 무한한 열정일 것이 분명하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능가한 점이 있다면, 학교에서는 ‘천덕꾸러기’였던 7차 교육과정의 ‘수준별 수업’을 학원에서는 잘 실천한 것이 하나의 사례이며, 이러한 반성에서 우리 교육의 방향이나 기준이 설정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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