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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평] 근대 건축물을 활용한다는 것

 

지난주에 필자는 울릉도에 다녀왔다. 관광지로 알려져 있는 이 섬에는 내가 일하는 곳의 보전자산에 해당하는 건축물이 하나 있다. 일제강점기때 악랄한 고리대금업자이자 제재업자(製材業者)였던 사카모토 나이치로의 일본식 목조 2층 상점 겸용 주택이다.

이 건물은 191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서 주택의 평면 및 입면이 잘 남아 있고, 특히 2층은 다다미가 깔려 있는 방과 도꼬노마(床の間 : 바닥을 한 층 높여 바닥에는 도자기 및 꽃병을, 벽에는 족자를 걸어두는 공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근대시기의 주택건축양식을 알 수 있는 건축사적 측면을 잘 보여준다. 더욱이 이 건물을 지을 때 사용된 목재는 울릉도의 울창한 삼림에서 침향목솔송나무와 같이 아주 내구성이 우수한 나무를 사용하여, 100여년 가까이 되었음에도 한 치의 뒤틀림이 없이 모든 구조가 아주 튼튼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236호로 2006년에 등록되었다.

처음에 이 건물을 매입하고 내가 일하는 곳에서 관리 주체로 결정되어 현장을 방문하였을 때, 인근 주민들이 해당 건물의 소유자였던 일본인에 대해 험한 말을 하면서, 왜 그 건물을 없애지 않고 남겨두느냐, 그런 건물은 빨리 없애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제 강점기때 사카모토에게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하여 갖은 고초를 겪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주민이라면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들어가서 보수공사를 위한 설계를 위해 이곳저곳 측량을 하고, 애초에 지었던 건물의 원형을 찾는 성과를 얻었다. 다행인 것은 주민들의 반응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 건물 바로 앞의 도로는 많은 관광객들이 지나다니는 중심가로여서인지는 몰라도, 주변에서 식당과 여관 등을 운영하시는 분들의 반응은 얼른 공사가 끝나서 울릉도가 좋아지도록 해주었으면 하는 반응이 주된 것이었다.

울릉도 이영관 가옥 외에 보성의 벌교 옛 가로에는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 중 하나였던 ‘남도여관’이 ‘보성여관’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하고 있다.

보성여관은 1935년 일제강점기때 지어진 일본식 목조건축의 특징이 잘 남아 있으며, 문화재보호법에 의하여 등록문화재 제132호로 등록되었다. 연회장으로도 쓰였다던 이 여관의 널찍한 2층은 자유당 정권 시절 국회의원 선거때 선거유세장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하는 곳이기도 하다. 세월이 흘러 건물 뒤쪽에 방을 계속 덧붙여서 여관으로 사용해 오다가 등록문화재로 등록이 되었고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서 보전과 관리를 맡게 되었다.

위 두 개의 건물은 일본식 목조 2층 건축물이라는 것과 일제강점기때 일본인에 의해 지어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울릉도의 건축물은 지역 주민들에게 치욕스러운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장소여서, 혹자들은 왜 일제 강점기때 지어진 일본 건축물들을 문화재로 등록을 하고 보전하고 관리를 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근대시기는 일제강점기를 빼놓고는 이야기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 지어진 주요 건축물이나 시설들이 우리나라의 자원을 수탈하고 백성들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곳이라는 것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개발시대를 거쳐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제강점기때 지어진 건축물들이 이와 같은 이유로 대부분 사라졌거나 훼손되었다.

우리가 우리의 후손들에게 왜 나라를 지켜야 하고, 일제 강점기때 있었던 일들을 무엇을 가지고 얘기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반드시 문헌만 가지고, 기억만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쉬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다른 나라들에서의 근대건축물들은 우리와 같은 아픈 기억이 깃들어 있지 않아서, 요사이 많이 얘기되는 ‘문화와 예술’에 의해 근대건축물을 재활용하고 지역활성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현재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들은 ‘아픈 기억’이 남아 있기에, 단순히 철거하여 현대식 건물로 재개발하는 것보다도, 근대건축물들을 잘 보존하여 ‘아픈 기억’을 잘 간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후손에게 ‘역사관과 국가관’을 길러줄 수 있는 좋은 체험교육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그 근대건축물을 방문한 서양인에게는 일제의 만행을 각인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곳을 방문한 일본인에게는 자신들의 가까운 조상들이 행한 만행에 대해 소상히 알고, 그것이 얼마나 극악한 행위였는 지를 깨닫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근대건축물을 포함하여 근대시기에서 가치가 있는 것들을 근대문화유산이라고 하며, 이 유산은 반드시 ‘보존’하고 ‘활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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