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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 다같이 돌자! 과천 한바퀴♬♪ 산책 명소 탐방

한발 한발 걷다보면 숲속 새들과 길섶 꽃들의 ‘눈맞춤’
단풍·은행나무 얽히는 터널…언뜻 비치는 햇살 따사로워
생동하는 초록 마음이 ‘파릇’…걷다지친 발 개천 물에 ‘첨벙’

 


태초에 길은 없었다.

인류가 이동하는 통로가 곧 길이었고 발길이 잦아지면서 길도 늘어나 상호 소통의 장으로 이용됐다.

길은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지위의 낮고 높음을 구분 않고 말없이 한 켠을 내준다.

마음의 안식처로 혹은 다정한 벗이 되기도 했던 길은 산업구조가 세포분열을 일으키기 전엔 남도 삼백리가 외줄기로 족했으나 세상살이가 복잡해지면서 거미줄처럼 씨줄 날줄로 얽혔다.

그 많고 많은 길 중에 우리는 어떤 길을 가고 싶고 걷고 싶을까.

깊은 산속 호젓한 숲속 오솔길처럼 정감이 넘쳐 시(詩) 한 구절이 절로 떠오를 것 같은 그런 길이면 만인의 사랑을 받고도 남는다.

그러나 초침처럼 일상생활이 바삐 돌아가는 현대인에겐 그것은 어쩌면 사치다.

그렇다면 직장이나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아 먼 길 떠나는 부담 없이 번다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의 안식을 구할 곳은 없을까.

과천은 의외로 그런 곳이 많다.

가까운 곳이면 집에서 몇 발작만 나가면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하늘이 보이지 않고 걷노라면 스트레스로 깨질 것 같던 머리가 상쾌해지는 곳.

연인들이 팔장을 끼고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며 사랑의 깊이를 더해가는 곳.

그런 곳들이 도심 곳곳에 마치 꽁꽁 숨겨놓은 보물처럼 얼핏 스쳐 가면 보이지 않은 곳에 감춰져 있다.

내점길, 교동길, 대공원나들길, 청사로 길 등으로 우열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장관이다.

중앙로 변에 위치한 KT와 주공 1단지에서 관악산을 연결하는 샛길인 교동길은 폭이 좁지도 넓지도 않아 산책하기에 적당하다.

거리는 500m 내외나 자연이 주는 안락함을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다.

일단 길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하늘 구경은 힘들다.

나이가 50~60년 이상 묵은 단풍나무와 느티나무의 무성한 잎들이 마치 자존심을 세우듯 햇빛을 허용하지 않는다.

식물 입장에서 보면 일조량을 조금이라도 많이 받으려는 생존경쟁의 법칙이겠지만 한여름 무더위도 이곳만은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선다.

30도를 오르내리는 요즘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은 벤치에 앉아 세상 돌아가는 얘기와 손자, 며느리 자랑으로 느긋하게 시간을 죽인다.

야간 조명을 받은 나무들은 무척 아름다워 그 풍치를 즐기려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다.

큰 나무 밑엔 예쁜 화단을 꾸며 음지식물을 심어놓았으나 햇빛이 하도 들지 않아 해마다 보식을 한다고 시청관계자는 자랑 섞인 엄살을 떨었다.

교동길과 약간 떨어진 내점길(과천역~과천교회)도 마치 형제인 양 경관이 빼다 닮았다.

숲은 우거져 언듯언듯 비치는 손바닥 햇살마저 눈부시지 않고 각선미가 도드라져 보이는 줄기와 섬세한 가지가 마치 예술품을 보는듯한 아름드리 왕벚나무와 당단풍나무는 산책로의 품격을 한층 높인다.

금낭화는 수줍은 새색시처럼 고개 숙인 노랑꽃을 피웠고 우산나물은 갈대 같은 긴 줄기 위에 연분홍 꽃을 피워 산책객들과 열심히 눈 맞춤을 한다.

가는 길에 마주치는 굴다리엔 시민들이 그린 그림과 사진을 타일로 제작, 붙여놓아 시선을 머물게 한다.

시인과 미술가들은 명당인 이 자리를 놓치지 않고 전시회를 가져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두 길은 산새들과 온갖 매미 등 곤충들이 찾아와 짝을 찾아 사랑을 노래하고 잎과 잎이 바람에 부대끼며 내는 숲의 소리가 지휘자 없는 교향곡을 연주한다.

시청에서 주공 8단지를 연결하는 도로변에 조성된 관문로는 사계절 사랑받으나 특히 가을엔 명성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외래 길손이 더 붐빈다.

빨갛게 물든 단풍도 가을에 걸맞은 구경이나 노란 은행잎은 1㎞ 구간을 사정 두지 않고 융단폭격 한다.

연인들은 만추의 계절 발밑에서 바스락대는 은행잎을 밟으며 정담을 나눠 사랑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잰다.

아파트 재건축으로 훼손될 위기에 처하자 시민들은 분연히 일어나 지켰던 길이기도 하다.

코오롱 본사에서 문원나들목까지 펼쳐져있는 청사로도 그 정취가 관문로와 흡사하다,

단풍나무, 플라타너스, 은행나무 등이 혼재된 이곳 역시 긴 숲 터널로 시민들이 애용하는 코스다.

줄사철나무는 줄기에서 나온 기근이 180도 가파른 나무 위를 힘겹게 기어오르고 개화기면 아주 작은 앙증맞은 흰 꽃을 피워 가던 길을 붙잡는다.

청계초등학교와 주공 7단지 사잇길인 멘토의 거리는 울창한 숲이 우거진 곳은 아니나 지나가는 이들이 생각에 잠기게 한다.

보기흉한 철망과 철조망으로 이웃과의 대화를 단절시켰던 이곳은 몇 해 전 아파트 입주민들이 목책으로 바꾸고 예쁜 액자에 시를 넣어 걸었다.

세계의 명시(名詩)를 잠시 머물러 음미해보면 인생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된다.

출발점이 부림동주민센터인 대공원나들길은 도심에선 좀체 보기 힘든 실개천이 있어 어른들에겐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자연 그대로는 아니고 과천시가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다.

대공원순환도로까지 500여m 길에 폭 1m 길이 239m인 실개천은 동네 어귀를 휘돌아 나가는 개천에 발 담그며 놀던 옛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인공폭포에서 떨어지는 당찬 폭포소리는 청량하고 각종 초화류를 구경하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2개 저수조엔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온 비둘기와 까치들이 목을 축여 갈증을 달래고 이식한지 몇 년째인 회화나무는 키를 다툰다.

이들 길을 걸으면서 갖는 감정은 자연이 주는 안락함이지만 왠지 옛 사람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관악산이나 청계산을 오르내리며 땔나무를 구했던 통로가 아닐 까는 생각이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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