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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법치주의는 작은 일상에서부터

준법의 기본은 ‘습관’
‘설마’가 사람 잡는다

 

음주운전을 3번 하다가 마침내 구속된 사람이 있다. 그는 첫 번째, 두 번째까지도 처벌은 받았지만 설마 구속까지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술은 좀 마셨지만 충분히 운전할 정도의 감각은 남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신호등이 노란불에서 빨간불로 막 바뀌려는 찰나, 단 1분을 더 먼저 가기 위하여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곱디 고운 초등학생의 모습을 다시 볼 없게 만든 청년도 있었다. 그 청년은 가끔씩 아슬아슬한 신호에 전속력으로 달렸지만 그동안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설마 그렇게 큰 사고가 날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구치소의 유리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나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때서야 “사소한 신호위반이 이렇게 큰 사고를 불러올지 몰랐다”고 한다.

때로 우리의 삶의 방향을 가르는 아주 큰 사건이 실상은 아주 작은 나쁜 습관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했던 작은 습관이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만들고 인생의 큰 비극을 만드는 것을 종종 본다. 법에 어긋나는 행동인줄 알면서도 계속 반복하다보면 준법의식이 무뎌져서 오히려 법을 지키면 손해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것은 참으로 실감나는 말이다. 매일 신문, 방송을 통하여 나오는 사건·사고들이 대부분 어릴 때부터 규칙의 준수가 철저하게 몸에 배지 못하고 성장하면서 쉽게 이를 포기함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들이다. 어릴 때부터 횡단보도로 건너도록 훈련된 아이는 무단횡단을 하면 스스로 마음이 불편하여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횡단보도로 건너게 된다. 이처럼 법치주의는 작은 실천의 반복에서 나온다.

법은 사회 구성원 사이의 약속이요, 규칙이다. 규칙을 따르는 삶은 왠지 멋과 낭만이 없어 보이고, 답답해 보이며 융통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일상에서 잠시 일탈하는 낭만과 규칙을 무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우리의 삶은 거대한 업적 보다는 아주 사소한 일상에 성실하고, 규칙을 지키는 가운데 다른 사람에게 미소 짓게 만드는 작은 감동의 반복이 있을 때 아름다운 것이다.

최근 청소년, 일반시민에 대한 법교육을 위하여 법 경연대회, 모의 법정, 생활법률교실 등 많은 아이디어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법교육은 법에 대한 지식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약속에 대한 자발적인 준수의 습관에서 시작된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법치주의 국가라는 위대한 헌법의 이념도 작은 일상에서 실천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물리적인 충돌이 아닌 대화와 설득의 기본 규칙을 배우지 아니하면 국회에 입성해서도 몸싸움과 고성으로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가게 되는 것이다.

정당한 대가가 아니면 받지를 말고, 내가 하기 싫은 일이면 다른 사람도 하기 싫어한다는 아주 간단한 원칙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법치주의의 시초이다.

인간은 혼자 사는 고독한 존재가 아니라 너와 내가 서로 대화하는 존재이다. 규칙을 지키는 것은 나 다음에 너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너와 내가 공존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며 대화의 끈을 열어두는 것이다.

흔히 “법대로 하겠다”고 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이제 너와 나는 끝장이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모든 일을 법과 규칙대로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의식의 성숙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법을 지키면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 일생의 큰 사고를 줄일 수 있는 좋은 습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법치주의라는 거대한 이상이 우리의 작은 일상에서 매일매일 작은 꽃으로 피어나길 소망한다.

프로필
▶1964년 전북 순창 출생
▶1987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2006년 전주지방법원 부장 판사
▶2007년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2008년~현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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