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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달의 선승’의 가르침과 문화 선진국

61년만의 개기 일식
진정한 창조 실천할 때

 

7월 22일 오전 9시 반부터 태양계의 우주쇼가 있었다. 달이 태양을 먹는 개기 일식이 61년 만에 일어난 것이다. 그 다음 개기 일식은 2035년이 되어야 볼 수 있다고 한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낮달이 부동의 태양과 자전하는 지구 사이에 한순간 직선으로 놓이며 포개지는 교합 장면 때문에 잠시 세상이 어두워지는 기현상이 연출된다. 태양신 숭배의 긴 역사에서 이런 현상은 서구 문명권에서는 불길한 흉조로 여겨진 반면에, 음의 잠재력을 만물 생성의 근원으로 여겨온 동양에서는 오히려 경사스런 일로 여기곤 했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직원들은 미술관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달이 태양을 서서히 삼켜버리는 이 대역전극을 지켜보며, 백남준 예술의 신화적 상상력과 정치적인 비전을 떠올렸다. 항상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했던 그에게 역사상 선례가 없는 비디오 예술은 달과 숙명적 연관 속에 탄생하였다. 개기 일식 바로 이틀 전인 7월 20일은 백남준 탄생 77주년이었고, 특히 그 날은 40년 전(1969) 아폴로 11호의 루이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 표면을 밟은 날과 겹쳤다.

달은 지구 생명의 리듬을 조율하는 별들의 으뜸으로서, 동양사회에서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보이지 않는 탯줄이 연결된 우주의 여신으로서 마음, 영감, 모성, 평화, 자비를 상징하였다. “달은 최초의 TV”라 말했던 백남준이 비디오 아트를 발견하게 된 배경에는 20대 후반의 나이에 전자 TV를 실험하던 중, 음극으로부터 방출된 전자의 흐름이 형광면을 때리며 빛을 내는 진공관(CRT)의 원리를, 약한 힘(음극)이 강한 힘(양극)을 이긴다는 선불교적 깨달음으로 번역해냄으로써 기발한 착상이 터진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발견에 다양한 현대 지식과 정보를 융합하고 서로 다른 것을 혼합 제조함으로써 지금부터 50년 전에 선진국들에서 조차 인식이 부족했던 이질적인 분야들 간의 ‘통섭’, 즉 혼성적인 지식의 진정한 마에스트로가 되었다.

기원 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단칼에 끊어 아시아를 통치하게 되었다면, 백남준은 이제 그 끊어진 매듭을 다시 묶어 연결 상태로 이해하는 방식을 되찾아 놓았다. 지식과 이익, 정의, 권력이 섞여 돌아가는 세상 자체를 보고 천상과 지상, 전지구적 수준과 지역 수준, 인간과 비-인간(자연, 로봇, 테크놀로지 등)을 뒤섞어 난맥상 자체가 혼합작용을 하여 세계를 다시 한 덩어리로 짜맞추는 식으로 예술 작업을 한 것이다.

 

젖은 두뇌의 소유자인 백남준은 1967년 유태계 여성 챌리스트 샬로트 무어맨의 유방에 귀여운 소형 TV 모니터를 부착한 뒤 ‘실시간으로’ 인간의 달 착륙 장면을 관객들이 보게 하였다. 인공위성 중계를 통해 여성의 부드러운 젖가슴과 대기권을 벗어난 우주인의 달착륙 장면이 리얼 타임으로 랑데부를 하는 것이다.

이런 천재적 감수성은 20세기의 그 어떤 거장급 예술가들도 감히 따를 수 없는 탁월한 것이다. 태양계의 자궁인 달과 연관된 흥미로운 작품이 있다. 그의 나이 50이 되던 해에, 백남준이 독일인 친구에게 선물로 보낸 작품으로, 흔히 자서전이라는 것은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후의 일들이나 사건, 업적 따위를 기록하는 것이지만, 백남준은 시간을 되돌려 자신이 태어나기 110일 전에 엄마의 태내에 있는 아이로 스스로를 설정하여 태아 백남준이 엄마와 대화를 하는 <태내기 자서전>이라는 드로잉 작품을 제작했다.

 

백남준이 태어나던 해인 1932년 4월 당시에 뉴욕타임즈지의 일요판은 무려 200페이지에 200파운드 무게나 되었는데, 백남준은 일부러 4월 1일 ‘만우절’ 날의 신문을 구해 시간을 되돌리는 허구를 이용해 세상에 하고 싶은 진실된 말을 전했다. 그가 타전하는 메시지는 앞으로 세상은 더욱 더 마음과 마음으로, 위성과 위성으로 교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달의 선승이자, TV 붓다 백남준의 시대를 앞지른 가르침을 국내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누구와 해야 하는가? 창조에 대한 관념적 수사가 흘러넘치는 세상에 그 깨달음과 정직한 실천만이 한국이 문화 선진국으로 가는 아마도 ‘거의’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로필
▶1957년 경기 동두천 출생
▶1987년 서울대 미학과 대학
원 졸업
▶2005년 올해의 예술상 수상
(전시기획부문·한국문화예
술위원회)
▶2008년 <나우 점프> 백남준
아트센터 개관기념 백남준
페스티발 총감독
▶2008년~현재 백남준아트센
터 관장,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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