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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이런 인천을 생각한다

낡고 한적한 거리 사라져
너무 빨리 변하지 않았으면

 

인천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광역시로 바뀌면서 인천시의 외곽 지형이 크게 바뀌었고, 영종도에 인천공항이 건설되면서 면실상부하게 물류 중심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송도신도시가 만들어지면서 다시 국제적인 교육도시, 첨단산업도시로 발전해가고 있다. 이러한 인천의 변모는 경제규모 면에서 대구를 추월하여 부산까지 넘보게 만들고 있다.

인천의 이같은 빠른 변모는 대체로 인천 사람들의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을 증대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역사의 축적보다 발전이 앞서는 변화가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익숙한 도시, 친숙한 도시라는 이미지. 다시 말해 인천에 대한 애정을 키울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보장받지 못하는 변화가 불편하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인천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첫째, 내가 상상하는 인천에는 천천히 걸을 수 있는 낡고 한적한 거리가 이곳 저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신포동의 낡은 거리 같은 곳이 주안에도, 부평에도, 송도에도, 강화도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들로 하여금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게 만드는 낡은 거리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60년대나 70년대쯤은 회상시켜 줄 수 있는 거리가 몇 군데 있었으면 좋겠다. 자동차를 피하기 위해 허겁지겁 움직여야 하고, 소음 때문에 머리 속에 어떤 생각도 떠올릴 수 없는 그런 거리가 아니라 천천히 마음 편하게 30분 정도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마음이 허전할 때 집을 나서 그런 거리를 걸으면서 자기 자신과 함께 낡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고즈넉이 느끼고 싶다.

둘째, 내가 상상하는 그런 거리에는 커피 가게, 고서점, 생맥주집, 칼국수집, 국밥집 같은 것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시류에 따라 이런 가게 저런 가게가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수십년 동안 동일한 업종을 계속해온 관록있는 얼굴들이 고집스럽게 자신의 방식으로 영업을 해나가는 가게들이 대여섯 개 있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의 습관과 기호까지 기억하는 가게 주인들이 “오늘도 에스프레소 커피를 드릴까요?”라고 말하거나 말없이 기네스 생맥주 250CC를 당연한듯이 가져다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일상성이 싫어지고 마누라의 눈총이 귀찮아질 때 고서점에서 산 책을 커피가게나 생맥주집에서 한 시간 정도 들쳐보면서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피하고 싶다.

셋째, 내가 상상하는 거리에서는 마주칠 수 있는 비슷한 산책자의 얼굴이 서넛 있었으면 좋겠다. 장돌뱅이처럼 이곳저곳을 떠도는 얼굴들이 아니라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살아서 거리와 함께 색이 바래가는 얼굴들이 서너명 있었으면 좋겠다. 그 거리에 가면 당연히 그러나 우연하게 마주칠 수 사람,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고 말 한마디 없이 비껴가도 섭섭하지 않은 사람들이 몇 명쯤 있었으면 좋겠다. 비슷한 처지에서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 특별히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아닌 사람, 다정한 사이도 서먹한 사이도 아닌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다정했던 친구 사이에서 문득 불편한 일이 생겼을 때 마음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그런 산책자들과 어울려 생맥주를 한 잔 마시고 싶다.

거리의 모습을 바꾸는 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돌아올 이익의 문제이기 때문에 아마도 나의 상상은 현실로 바뀌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미래가 비록 경로당을 찾아 고스톱을 치는 길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일지라도 나는 아직까지 내 상상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프로필

▶1953년 경북 예천 출생
▶1981년 서울대 문리대학원 박사 졸업
▶1992년~현재 인하대학교 교수
▶2008년~현재 문학과 지성사 대표이사
▶2009년~현재 인하대학교 문과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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