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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새로운 출발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때
성실하게 아름답게 살자

 

‘처음’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항상 가슴 두근거림과 이름모를 호기심을 갖게 한다. 처음 부모를 떠나 낯선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할 때 그러했고, 발령을 받아 첫 임지로 떠날 때도 그러했다. 요즘은 모두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 새로운 ‘처음’의 이름표를 붙여놓고 또 다시 호기심과 새로운 각오의 눈을 반짝이는 때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가는 해와 오는 해 사이에서 비장한 각오로 책상에 앉아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새해의 각오를 써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성년이 되어서는 1월 1일 새해 첫 시간에 교회에서 신년예배를 드리고,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하여 새벽부터 산행을 하거나 바닷가에 가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감격의 순간을 누렸다. 그런데 그러한 감격을 맛보고 난 후 정작 새해 첫날부터 피곤에 쌓여 오후 내내 잠에 빠져 불규칙한 리듬으로 새해 첫날을 보내는 안타까움이 늘 있었다. 그래서 올해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첫날을 맞이하였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지난 2009년 첫날 아침에 썼던 종이를 꺼내 보았다. 2009년 첫날에 한 해 동안 받은 감사의 제목과 새해의 소망을 적었던 쪽지이다. 감사의 제목들을 보면서 우리가 사소한 것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둘째아이는 좋아하는 000가수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감사하다고 적은 내용도 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하찮아 보이는 감사제목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둘째는 그 가수에 온통 빠져 살았다.

우리는 또 다시 2009년 한 해 동안 받은 감사의 제목과 2010년에 이루고 싶은 소망을 쪽지에 썼다. 이 쪽지는 2011년 1월 1일 아침에 다시 꺼내어 볼 것이다. 작은 쪽지에 쓰는 글귀들이 우리를 사뭇 경건하게 하고 내년 이맘때쯤 어떤 기분으로 이 쪽지를 대할까 하는 설레임까지 느껴졌다.

오후에는 산행을 하였다. 말없이 손에 손을 잡고 서있는 나무들... 나를 보며 나무처럼 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부산하게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고, 침묵하여야 할 때 침묵하면서 새로운 시간을 인내로 기다리는 나무, 기쁠 때 마음껏 기뻐하면서 생명의 합창을 만끽하는 나무, 그리고 늘 자기의 자리에서 자신의 본분을 지키면서 생명의 의무를 잘 감당하는 나무...

뜨거운 한여름의 태양 아래에서 그늘을 드리워 나눔을 실천하다가, 가을이면 심는대로 거두는 진리를 열매로 가르쳐 준다. 한 해 동안 나의 욕심으로 다른 사람을 섭섭하게 한 일은 없는지, 내가 가진 것을 감사하지 않고 더 가지겠다고 얼굴 붉힌 일은 없는지... 나무보다 못한 나의 모습인 것 같아 마음 속에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휴대폰에는 계속 새해를 축복하고 기원하는 문구들이 몰려온다. 나도 받은 축복을 나누고 싶어서 덕담으로 답변의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나의 의뢰인들이 진심을 담아 감사와 축복의 문자를 보내줄 때 특별히 감사하다. 내가 새벽 일출을 보러 가지 않은 것을 알고 멋진 일출사진을 찍어 휴대폰으로 보낸 지인의 마음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미소로, 따뜻한 말로 타인에게 나누어 줄 것이 참으로 많다.

새해 첫 출근날, 사방에 눈이 쏟아져 출근길이 막히고, 시무식에 늦을까봐 발을 동동구르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나도 차를 집에 두고 걸어서 출근하였다. 발목까지 쌓인 눈길을 걸으며, ‘하필 새해 첫 출근날...’ 하고 불평이 나올뻔 했다. 그런데 눈을 들어보니 쏟아지는 눈을 불평하지 않고 두팔 벌려 가득 눈을 맞으며 받아들이는 길가의 나무들이 또 새롭게 다가온다. 60년만에 돌아온 백호의 해라고, 하늘도 온통 하얀색으로 축복하는 모양이다. 세상 모든 것 뒤에 가면을 쓰고 숨어있는 축복의 모습을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찾아보아야 하겠다.

오늘도 성실한 만남 속에 올 한 해를 더욱 아름답게 살리라는 다짐을 하며 가슴 떨리는 발걸음을 새롭게 내딛는다.

프로필
▶1964년 전북 순창 출생
▶1987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2006년 전주지법 부장 판사
▶2007년 인천지법 부장 판사
▶2008년~현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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