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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안중근, 동양평화의 선각자

민족 초월 아시아평화 구상
100년전 韓中日공동체 역설

 

“안중근을 역사(행적)에서만 근거하여 평가할 때 어떤 사람은 그를 몸 바쳐 나라를 구한 지사(志士)라 하였고, 또는 한국을 위해 복수한 열렬한 열협(烈俠 : 義烈士)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러한 말로만은 안중근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안중근은 세계적 안광(眼光)을 갖고 평화의 대표자임을 자임한 사람이다. 어찌 그를 한국의 원수만을 갚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으랴.” 이것은 독립 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백암 박은식 선생이 1914년 상해에서 펴낸 ‘안중근전’에 수록된 그에 대한 평가이다.

올해로 안중근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순국한지 꼭 100년이 됐다. 그동안 그에 대한 내외의 역사적 평가는 역도, 흉도, 의사, 의병장, 평화사상가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왔다.

“바로 오늘 이토 공작이 하얼빈에서 흉악한 역도에게 화를 당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놀랍고 통분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에 삼가 똑같은 마음으로 지극한 뜻을 표시하는 바입니다.”

이글은 이토 히로부미가 안 의사에게 저격당한 1909년 10월26일 당일에 대한제국의 순종황제가 일본천황에게 보낸 전보로 조선왕조실록 순종실록에 실려 있는 기록이다.

순종실록에는 안 의사를 역도로 지칭하는 외에도 ‘고약한 백성’이나 ‘우리나라 사람’으로 부르고 있다. 이에 반해 이토는 태사(太師 : 황태자의 사부)나 공작으로 높여 부르고 있다. 순종실록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해도 일본인의 시각에 입각한 것이다.

해방 이후 미군정을 거치면서 그는 역사교과서나 신문지상에 ‘의사(義士) 안중근’으로 복권된다. 그러나 의사 안중근은 ‘나라의 원수이며 일제의 원흉인 이토를 쏘아 죽인 의로운 항일운동가’나 ‘대한의군참모중장’이란 의병장 의미에 가깝다.

그가 20세기 초반 제국주의가 이전투구를 벌이던 시기에 민족을 넘어 동양의 평화를 구상했던 선각자이며 사상가라는 것은 21세기 들어서야 비로소 부각되고 있다. 그는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지만 1910년 3월26일 일제에 의한 사형집행이 이뤄지면서 끝내 완성되지 못한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이토의 동양평화론에 대응하는 측면이 있다. 19세기 러시아 등 서양세력이 시장개척과 값싼 자원공급처를 찾아 아시아를 침략해오자 일본 내에서는 日, 淸, 韓이 힘을 합치면 유럽인의 침략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가 나타났다. 여기에 동조해서 한국의 지식인들도 삼국동맹이나 삼국연대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일전쟁 승리 이후 일본이 주도하는 동양평화론은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변질되고, 여기에 이토가 앞장섰다.

이토는 1905년 11월15일 고종황제를 알현하면서 “일본 황제폐하는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유지하도록 대명(大命)을 내시어 친히 폐하에게 전달하도록 했다”며 을사늑약을 강제했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찬탈해가면서 동양평화로 위장한 것이다.

안 의사는 “일본은 종래 약한 나라를 병탄(倂呑)하는 외국에서 써오던 수법을 흉내내고 있다”며 이토의 동양평화론을 반박했다. 그리고 그는 19세기 이후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동아시아를 지키려면 한·중·일 3국이 힘을 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여기에 뤼순에 한·중·일 3국이 참여하는 동양평화회의를 설치할 것, 3국 공동 은행을 만들어 공용 화폐를 발행할 것, 3국의 젊은이로 공동 군대를 편성하고 상대방의 언어를 가르칠 것 등의 방안도 제시했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저술된지 한 세기가 흘렀다. 그 100년 동안 한국은 G20의 의장국이 됐고, 중국은 세계의 부를 휩쓰는 블랙홀로 미국과 어깨를 함께하는 패권국이 됐다. 그러나 안 의사의 구상 속에 싹텄던 ‘한·중·일 공동체’는 지금도 여물지 못하고, 동북아는 여전히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

이제 그의 순국 100년을 맞아, 단지 의사나 영웅으로 보는 시각을 넘어서야 할 때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지닌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발굴해서 동아시아에 번영과 평화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새삼 안 의사를 보는 백암선생의 혜안이 놀랍다.

프로필
▶ 1956년 충남 홍성 출생
▶ 1985년 건국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 1985~1999년 서울고법, 인천·대구지법 판사
▶ 2006~2007년 인천시 정무부시장
▶ 2008~현재 제18대 국회의원(한나라당, 인천 남구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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