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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 꼴찌에게 희망을

 

지난 2월 10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학습부진아 살리기 운동’ 주최로 정책 토론회가 있었다.

이제까지 교육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은 교육경쟁력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세상은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의 세상 아닌가? 그러나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치열한 교육경쟁의 패러다임 속에서 낙오되는 아이들에 대해 현장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학습부진아 대책을 발표하고 선언까지 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들이 발표한 대책에 대해서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뭔가 2% 부족한 부분이 있다.

학습부진아에 대한 개념 정립이 애매모호하기는 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적 상황에서 학습부진아 문제는 입시 경쟁과 동떨어져서 논의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수월성 교육철학이 지배하고 있는 교육구조 속에서는 학습부진아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에 진학하려는 것이 현 공교육을 지배하고 있는 정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학습부진아에 대한 관심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고 또 학습부진아들은 어찌하든지 웬만큼 기초학력을 쌓아서 입시 경쟁의 대열에 뛰어들려는 것이 당연하다.

공교육 안에서 가능한 학습부진아 대책들로는 학습부진아들을 위한 특별지원교사의 배치,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확보, 공교육의 수업혁신, 튜터시스템, 퇴임교사들의 교육봉사제도, 교육지원센터와의 네트워크 구성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다 좋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학습부진아 문제는 프로그램의 문제나 지원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지금도 학교 현장에서는 학습부진아들을 위한 방과후학교와 수준별 이동수업이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시도들이 거의 실효성을 거두고 있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설사 이런 프로그램들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재정적 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특별지원교사가 투입되더라도 공교육 내에 치열한 교육경쟁이 존재하는 한 학습부진아는 계속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학습부진아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학습부진아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은 옳다.

미국의 NCLB(No Child Left Behind, 낙오학생방지법) 정책이나 ‘평등이 곧 효율’이라는 교육철학에 입각한 핀란드의 교육형평성 정책의 출발은 모두가 학습부진아에 대한 관심과 배려에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교육 체제 안에서 학습부진아들에 대해서 학교나 교사가 얼마만큼의 관심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를 반성해 보자. 수월성 교육철학과 형평성 교육철학이 공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공교육 현장은 미안하게도 두 교육철학이 쉽게 상생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리고 공교육을 떠나서 학습부진아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대안교육 운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학습부진아 대책을 왜 꼭 공교육 안에서만 찾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대안학교의 학생은 불과 120명밖에 되지 않지만 학교는 그야말로 꼴찌들의 집합소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데도 알파벳과 영어 발음기호조차도 모르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초등학교 수준의 수학실력을 갖춘 아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누구보다도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는 이들 꼴찌들의 기초학력 신장보다도 꼴찌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고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우며 삶의 희망을 심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교육이념으로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회복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3학년에 올라갈 때쯤이면 어떤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면서 공부에 미친듯이 매달리기도 하고, 어떤 학생들은 자신의 달란트를 계발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졸업을 할 때가 되면 꼴찌들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을 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선다.

이런 교육의 결과들을 보면서 학습부진아들의 희망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해본다. 꼴찌들로 하여금 기초학력 신장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통해 치열한 교육경쟁 구조 속에 다시 뛰어들게 하는데 있을까 아니면 수준이 높아진 꼴찌에 만족하도록 하는 데에 있을까?

분명한 것은 적어도 우리나라의 공교육 맥락에서 학습부진아 대책은 꼴찌에게 희망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꼴찌들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를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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