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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현칼럼] 풀뿌리 민주주의가 불법에 물들어서야

 

지난해 3월 12일 울산지역에서 금배지 하나가 날아갔다. 이날 대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한나라당 소속 Y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급 1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Y의원은 그날로 의원직을 빼앗겼다. 당시 Y의원에게 적용된 혐의는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것이었다. 17대 국회의원이었던 Y의원은 18대 총선을 앞둔 2008년 2월14일 울산∼언양 고속도로 통행료 폐지를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로부터 약속받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약속받았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했다가 결과적으로 법의 심판을 받아 국회의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무런 근거도 없이 공약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하지만 공약 부풀리기 선거의 풍토가 완전히 가셨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허위로 공약을 발표하는 것 못지 않게 죄악시 되어야 할 것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허위사실의 공표다.

이를테면 개인적인 약점을 사실확인 없이 발표하거나 치명타를 입을 수 있는 근거 없는 소문을 기정사실화 하는 거짓유세이다. 18대 총선이 끝난 지난 2008년 대검찰청이 집계한 총선 당선자중 선거법 위반혐의로 입건된 사람은 37명 이었다. 입건된 당선자 37명중 거짓말 사범이 20명(54%)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금품사범 8명, 문자메시지 발송등 불법선전사범 3명, 기타 6명이다. 선거사범은 죄질에 따라 1~30등급으로 분류하는데 등급에 따라 벌금을 부과한다. 특히 낙선목적의 허위사실 공표자는 높은 등급에 해당한다. 법정형이 벌금 100만원 이상으로 혐의가 확정되면 당선이 무효로 돌아간다.

지난해 12월 제주도 선거관리위원회가 오는 6월 치러지는 6.2지방선거에서 출마 희망자들에게 바라는 유권자의 희망사항이 무엇인지를 조사한 결과, 유권자들이 1순위로 꼽은 것은 ‘실현 가능한 공약’이었다. 깨끗한 선거, 현실성 있는 공약 중심의 정책선거보다는 혼탁 선거, 금권선거, 비방선거, 지역 연고주의 선거 등으로 얼룩졌던 게 우리나라 풀뿌리 정치의 현주소였던게 사실이다.

지난 2006년 출범한 민선 4기의 기초단체장 234명 가운데 18%인 42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다.

이 가운데 자진해서 사퇴한 5명을 제외한 37명의 38%인 14명은 공직선거법상 금품 살포와 기부행위 등 제한 규정을 위반했다. 이른바 ‘돈 선거’가 우리나라의 선거문화에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된 데는 후보자뿐 아니라 유권자도 한국 지방정치의 일그러진 모습을 만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오근섭 전 양산시장 자살사건은 돈 선거가 부른 극단적인 결과로 볼 수 있다. 검찰에 따르면 오 전 시장은 선거를 치르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해 고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2004년 6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선거 빚 60억원을 갚으라는 독촉에 시달리고 있었다.

앞서 2002년 지방선거에서 낙선하고서 선거 빚에 시달리다 땅을 담보로 저축은행에서 59억원을 대출받고 친지들로부터 2억원을 빌려 묵은 빚을 갚고 일부는 보궐선거 자금으로 썼다.

오 전 시장은 새 빚을 갚으려고 보궐선거에 당선된 이후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개발정보를 흘려주고 24억원의 뇌물을 받았다. 그 돈은 모두 빚을 갚는 데 사용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때마다 후보가 쓸 수 있는 법정선거비용 상한액을 정하는 것은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서다. 이번 선거에서 경기도지사 후보의 법정선거비용은 40억7천300만원으로 16개 시도 가운데 가장 많다.

그러나 많은 후보가 선거비용 제한액만큼만 쓰고는 당선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며, 유권자들도 이 규정이 제대로 지켜진다고 믿지 않는다.

1994년 제정된 이후 수차례 개정을 통해 보완된 공직선거법은 ‘돈 선거’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으나 현실은 여전히 돈에 오염된 선거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선거를 128일 앞둔 지난달 25일까지 기부행위 제한 위반 사례가 362건이나 선관위에 적발됐다.

후보자들의 달콤한 유혹의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면, 그래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가꾸려면, 무엇보다 유권자 스스로 깨어 있어야 한다.

지난달 26일 수원 이비스엠버서더호텔에서 ‘2010 시민매니페스토만들기 경기본부’ 주관으로 민선 5기 지방선거 경기도민 10대 어젠다 선정 및 주요 정당 경기도당 전달식이 열려 정책선거를 다짐했다. 그들의 활동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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