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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좋은 정치가와 나쁜 정치가

 

70년대 초에 대학에 다닌 필자세대에게 가장 나쁜 정치가로 각인된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우리세대에게 박정희라는 이름은 무자비한 탄압과 끔직한 고문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유신독재, 군사독재의 대명사이다. 그래서 그가 죽은지 3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대학동기 중 상당수는 “박정희만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듯 필자세대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확실하고 강렬하게 가장 나쁜 독재자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박정희의 유신독재 체제 아래 살았던 필자세대에게 박정희와 함께 나쁜 정치가로 간주된 사람들에는 전두환, 이승만 두 전직 대통령과 이기붕 전직 부통령이 있다. 전두환은, 필자세대가 대학을 졸업한 후에 집권했기 때문에 박정희만큼 독재자의 이미지가 강렬하지 못하지만, 광주사태의 충격 때문에 몹시 나쁜 정치가로 각인되었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세대의 머리 속에 김구를 암살하여 남북통일의 꿈을 원천봉쇄하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장기독재 길을 연 최초의 사람으로 자리잡았으며, 이기붕은 이승만에게 아부하면서 호가호위(狐假虎威)의 권력을 누린 간신정치의 표본으로 기억되었다.

반면에 필자세대에게 가장 오랫동안 좋은 정치가의 이미지로 기억된 사람들은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이다. 이 두 전직 대통령은 긴 생애의 상당부분을 필자세대와 함께 유신독재체제에 용기있게 맞섰고, 전두환 체제 아래에서도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정치가로 기억되었다. 그리고, 기억의 강도는 다소 약하지만, 이 두 사람과 함께 좋은 정치가로 기억된 사람에는 김구와 여운형과 박헌영이 있다. 당시 우리세대는 이승만과 박정희를 친일파 계열로 간주하면서 이들과 반대편에 오점없이 독립을 위해 생애를 바친 김구, 여운형, 박헌영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또 이승만과 박정희의 반공노선에 대해 독재정권의 유지를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극도의 반감을 가졌었기 때문에 좌우를 동시에 포용하려한 김구, 여운형, 박헌영이 반사 이익을 보면서 좋은 정치가로 인식된 측면도 있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오랫동안 좋은 정치가와 나쁜 정치가를 선명하게 구분하며 살았던 필자세대도 이제 60을 눈앞에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40대를 전후한 시기부터 선명한 구분을 의심하게 만드는 많은 일들을 겪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야심을 버리지 못해서 갈라서는 모습을 보았으며, 대통령이 되기 위해 여당과 합치거나 국민과의 약속을 깨고 3수를 감행하는 모습을 보았다. 또 사회주의 사회의 몰락과 남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개방을 통해 우리시대의 성경이었던 이영희의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가 낭만적 허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같은 책을 통해 남몰래 호감을 키웠던 레닌, 모택동, 카스트로, 김일성 등이 우리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끔직한 독재자들이란 실상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생각한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적어도 우리세대들은, 우리가 가진 경험이 강조하고 부각시킨 한계로부터 벗어나 좋은 정치가와 나쁜 정치가의 이미지를 수정할 때가 되었다고.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해서 나쁜 정치가로 분류했던 사람들이 가진 좋은 정치가의 측면을 새롭게 인식하고, 동시에 김영삼과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해서 좋은 정치가로 분류했던 사람들이 가진 나쁜 정치가의 측면을 재평가 할 때가 되었다고. 우리는 김일성이 이승만보다, 모택동이나 카스트로가 박정희나 전두환보다 훨씬 좋은 정치가라는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증거로 확인했다. 그들의 장기집권이과 반대자에 대한 탄압이 과거에 우리가 이영희의 책에서 배운 것처럼 인민을 위한, 인민이 원하는 명분있는 정치의 소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좋은 정치가와 나쁜 정치가를 구분하던 방식을 벗어나 우리의 구분을 좀 더 유연하게 상대화 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전면적 부정과 전면적 긍정의 극단적 대립을 벗어나 이들 모두를 우리 정치사의 발전에서 나름의 의미와 한계를 가진 사람으로 자리잡게 해 줄 때가 되었다. 그래야만 한국 정치는 지금의 분열과 대립을 넘어서 새로운 차원의 정치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는 지금의 이전투구식 정치를 종식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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