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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무소유

법정스님 책 100만원대 거래
진정한 의미 깨달아야 할 때

 

얼마 전 법정 스님이 입적하셨다. 우리에게 무소유라는 화두를 던져주고, 한 줌 재로 돌아가셨다. 법정 스님은 평생 이야기해 온 무소유를 실천하고자, 사리를 찾지 말라고 하였고, 스님의 책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달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얼마 후 인터넷경매에서는 무소유 책자가 100만원이 넘는 고가에 거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들은 왜 갑자기 법정 스님에 열광하고, 불과 몇 천원 정도 하던 책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에 구입하고자 한 것일까. 법정 스님이 그 소식을 접했다면 뭐라고 하였을까.

내가 무소유 책을 읽었던 것은 20대 대학시절이었다. 그 당시 무소유 책을 읽고, 나는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을 버려라. 그러면 오히려 짐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다’는 내용에 감복했다. 그 때 마침 같은 하숙집의 후배가 나들이 옷을 빌려달라고 청해 왔었다. 나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몸소 실천해 보고자,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던 옷을 건네주면서, 그냥 가지라고 주었다. 그러나 이상했다. 마음이 편해지고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아끼는 옷을 준 것이 후회가 되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소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가끔 봄 날 외출복을 고르다 보면, 그 옷 생각이 난다.

무소유 책을 한 권 읽었다고 해서, 그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견뎌야 했겠는가. 그렇다면 비싼 돈을 주고라도 무소유 책자를 소유하고자 하는 우리의 세태는 무엇을 대변하는 것일까. 그렇게까지 책을 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소유의 뜻을 알기 위한 노력이었을까, 아니면 오히려 소유의 기쁨을 누리기위해서였을까.

어쩌면 우리는 지나치게 물질에 물들어서, 이제는 원래 나의 빛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래서 대리만족의 대상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하기에 평소 그가 누구인지, 무소유가 무엇인지에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법정 스님의 입적에 호들갑을 떤다.

왜 법정 스님은 책을 출간하지 말라고 하였을까. 사람들은 책을 출간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 여러 말을 한다. 나의 생각은 책이 출간되어도 좋고, 안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이리라. 법정 스님은 한 줌 흙으로, 풀내음 향기 그 자체로 그냥 돌아가고자 하는 것일 게다. 한낱 일천한 글귀로 적은 책자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고, 후세에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은 누구를 위한 영광이겠는가. 그러한 것 또한 법정 스님에게는 부담스러운 욕심이었는지 모른다. 그마저 다 버리고 가고 싶은 그 분의 ‘무소유’가 아니었을까.

이러한 이야기도 해 볼 수 있다. 즉 오늘도, 아니 지금도 돈을 벌기 위하여, 남을 앞지르기 위하여 진땀을 흘려야 하는 우리 중생들에게 어쩌면 ‘무소유’야말로 욕심인지도 모른다.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생업전선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무소유는 사치로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소유가 없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不所有가 아니라 無所有인 것이다. 마치 블루마블 게임에서 분배되는 돈은 게임이 끝나면 원상태로 돌아가고, 게임당사자들은 다시 무일푼으로 돌아가듯이 말이다.

무소유. 그것은 법정 스님이 우리에게 던져준 화두이다. 자본주의 사회, 현대 물질문명의 최첨단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무소유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법정 스님은 더 이상 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아카시아 향이 나면 계절이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듯이 그분의 이야기가 회자되고, 사람들의 마음이 온화로움을 얻을 때, 그분이 우리와 한 시대에 살았구나 하면서 느끼게 되는, 그만큼의 소유가 그분의 소유라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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