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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칼럼] 정직한 사람이 희망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그 발전의 속도는 가늠하기 힘들다.

그러나 문명사회로 발전해 갈수록 인간 정신도 뒤따라 성숙해 왔는가. 그리고 사상도 진보해 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기술문명의 발달로 인간의 생활은 풍요로워지고, 편리함의 극치를 누려왔는지는 몰라도,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데 오히려 인간을 소외시켜 왔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 현대인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스스로 지식의 홍수를 이루며, 그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아는 것보다 그 아는 것을 통하여 깨닫고, 깨달음을 통해 지혜를 얻고, 그 지혜를 자신의 삶에 얼마나 적용시키고 반영시키고 있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수많은 사람이 후보자가 돼 무언가를 이뤄보겠다고 얼굴을 알리고, 명함을 돌리고, 악수를 청하고 보통 열심들이 아니다. 타인의 선택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뤄 보겠다고 온 몸을 던지고 있다. 물론 그 중에 선택받는 사람은 소수일 터이다. 그러면서 나는 잘 알지 못하는 후보자들을 보며, 마음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얼마나 정직한 사람들일까 하고.

우리 사회에서 선출직 공직자들이 갖는 의미나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지대하다.

지방자치 시대에 단체장은 소통령으로 통한다. 인사권, 인허가권, 예산집행권 등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사람이 완벽하고, 완전한 사람이 있으랴만, 선택받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최소한 정직한 덕목에서 만큼은 자신이 있었으면 한다.

지도자로서 많은 덕목을 요구 받지만, 가장 우선은 정직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사람의 속마음까지는 알 수 없을지라도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믿을 수 있다는 믿음만 줘도 바랄게 없다는 생각이다.

최근에도 있었던, 소위 우리나라 지도층이라고 하는 국회의원, 장관이나 기관장, 검찰 수뇌부에 있었던 일부 사람들의 언행을 보라. 말의 품위도 없고, 품격도 없고,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신뢰는 커녕, 비웃음만 사는 일들이 얼마나 비일비재로 일어났었는지를. 그래서 국민들로 하여금 실망을 넘어 절망을 느끼게 하고 있는지를.

일단 불리하다 싶으면 무조건 잡아떼고, 부인부터 하는 정직하지 못한 경박스러움은 정말 목불인견이 아니던가. 자신의 말에 책임질 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리더가 되고,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거짓을 밥 먹듯이 말하는 사람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마땅하고, 선출직 공직에 뜻을 두고 있는 지방선거 후보자들은 자기 말에 책임질 줄 알며, 정직성을 생명으로 알았으면 한다.

특히 종교인임을 내세우는 후보자나 선출직 공직자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떤 종교이던 간에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곧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삶이어야 할 신앙을 이용하여 표로 연결해보려는 심보거나, 동류라는 인식을 심어 표를 얻기 위한 도구로 여긴다거나 하는 불순한 의도가 있어서도 안 되겠지만, 종교를 희화하는 짓거리는 정말 삼갔으면 한다. 때로는 그 종교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로 말미암아 오히려 특정 종교를 조롱거리로 만들고, 욕 먹이고 있질 않던가. 이런 점에서 예수를 신앙하는 그리스도인이나 붓다를 따르는 불교인에게 있어서 예수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나, 붓다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정작 중요한 것은 예수나 붓다가 이 땅에 오신 목적과 그 분들이 삶으로 보여 준 가르침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깨달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예수나 붓다를 믿는다는 의미는 무엇이며, 그 가르침을 얼마나 몸으로 살아내느냐 하는 치열한 고민이 우선이 아닐까 한다. 그러려면 먼저 정직해져야 하지 않을까싶다. 그래도 덜 절망스럽고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그루터기 같은 성직자들과 정직한 종교인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소수일지라도 정직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다는 믿음이다. 가지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면서도 자기에게 진실하고, 남을 탓하기보다는 먼저 자기를 뒤돌아 볼 줄 아는 정직한 사람들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정직한 사람들은 일그러지고 비뚤어진 우리 사회의 상투적 최면에 걸리지도 말고, 정직하지 못한 주류를 향하여 정당한 비판과 함께 기득권 세력의 변화를 위하여 정직한 도전의 돌을 던지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결코 그 일을 포기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정직한 사람이 지도층을 이룰 때, 정직한 사람들이 지역사회의 희망이 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도 살고 나라도 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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