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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 체벌금지, 교육도 시스템도 없는 선택

 

“선생님은 우리를 더 잘 가르치기 위해 뭘 했지요?” 교원평가 설문지를 받아든 초등학생이 당당한 표정으로 던졌다는 질문이다. 그런 얘기가 나온 것은 한두 학교가 아니었다.

꿀밤 한 대씩을 얻어맞은 여자애들이 다짜고짜 교장실에 들어가 항의하는 정도는 이야깃거리도 아니다. 공부시간에 과자를 먹고, 핸드폰으로 장난치는 걸 말리다가 “네가 무슨 상관이냐!”는 반말에 두들겨 맞기까지 한 여교사가 우울증을 앓기도 하는 게 오늘의 학교현장이다.

중·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다.

“어? 뭐 이런 교사가 있나!” 이젠 그 애들이 여차하면 맞대놓고 그런 반응을 나타낼 가능성이 아주 높게 됐다. 체벌 전면금지 조치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좀 때려서라도 가르치고 싶은 간절한 교육적 필요에 의해서라면 초중등교육법시행령(제31조)에 따른 학칙의 범위에서 최소한의 체벌을 허용해왔다.

그 규정에는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훈육·훈계 등의 방법으로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각 교육청에서는 어떠한 경우가 그 ‘불가피한 경우’인지 꼼꼼히 예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서울교육청에서는 “교사의 체벌로 인해 학생의 인권이 크게 침해”되고 있다며 “2학기부터 모든 학교에서 체벌을 전면금지”했고, 경기도교육청에서도 방안을 마련 중이다. 사실은 체벌로 인해 학생의 인권이 크게 침해된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조치에 대해 갖가지 반응이 줄을 이었다. “교육을 포기하란 말이냐” “사랑의 매는 사어(死語)가 되느냐”는 일선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의 비판과 함께 “문제아 체벌을 막으면 나머지 학생도 망친다”는 것을 드러내놓고 주장하는 교사도 나왔다.

전국 학교장의 91%가 체벌 전면금지에 반대한다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조사결과도 발표됐고, 학생의 권리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대안도 마련하지 않은 채 금지조치부터 하면 문제 학생을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내쫓는 결과가 초래된다며 “진보교육감들의 일방통행식 정책이 불안하다”는 교총회장 인터뷰 기사도 보였다. 언론은 내놓는 정책마다 시끌시끌하다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그러자 서울교육청에서는 휴대폰 압수와 PC게임 금지, 문제집 풀기나 영어단어 암기 등 지벌(知罰), 봉사벌, 생활기록부 기재, 교실 퇴장, 학부모 면담 등 검토 중인 대체벌을 발표했다.

경기도교육청에서도 독후감·봉사활동·과제물 부과 등의 지덕벌(智德罰)과 함께 국내 최초로 그린마일리지(상벌점제)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교육적인 기사도 보였다. 체벌 허용 여부가 주마다 다르거나 전면 금지된 나라에서는 문제아를 어떻게 지도·조치하느냐에 대한 시스템 소개였다.

이미 체벌을 없앤 학교들도 소개됐다. 학생들이 ‘자치법정’을 열어 스스로 징계하는 학교들로, “세밀한 대체 프로그램을 꼼꼼하게 운영하지 않고서는 ‘체벌금지’가 공허한 이상”이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렇다면 체벌금지는 이상적이긴 하지만 교육선진국의 시스템 연구·도입이나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생활교육이 없는 상태에서 조치부터 이루어졌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교육과정 자료를 살펴보면, 중·고등학교는 특별활동 시간에 ‘모의재판’을 지도하도록 돼 있다.

재판 과정과 절차를 학습함으로써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법 운용에 대해 이해하고, 학급이나 학교에서 발생하는 갈등에 대해 폭력적 방법이 아니라 합법적 과정을 거치는 민주적 해결방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 예시된 목표다. 구체적인 모의재판 지도 이론과 실천 자료도 제시돼 있다.

문제는 우리의 교육정책, 교육행정에 따른 교육현실이다. 특별활동과 재량활동은 수많은 국가시책에 의해 운영의 재량권이 이미 학교에 있지 않고, 그나마 입시위주 교육에 매몰돼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르칠 걸 가르치고 배워야 할 걸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체벌을 허용하느냐 금지하느냐, 단호한 선택부터 해야 할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우선 정신을 차리고 교육과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 교육과정 행정을 중시하는 교육을 하면 모든 문제가 더 잘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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