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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더] 박노해 시인

지구촌 아픈 역사의 현장 렌즈 통해 진실을 찍었죠

무기 징역을 선고받고 7년5개월을 복역한 뒤 98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나서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해외로 나갔다.

10년 동안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남미 등의 분쟁·극빈 지역을 돌아다녔다.

총알과 포탄, 가난과 굶주림이 도사리는 마을과 마을을 지나며 ‘이들의 진실을 담는 데 시로는 미약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도, 강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카메라였다.

사진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 그는 시를 쓰듯 카메라를 들었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는 21세기 인류에 대한 삶과 근원적 혁명을 추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시인이자 노동자이자 혁명가’로 온몸을 던져 살아온 박노해의 12년 만의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가 13일 출간됐다. 더불어 박노해 시인은 시 외에도 지난 6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나 거기에 그들처럼’으로 두 번째 사진전을 개최했다.

그에게는 시와 사진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매개체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그렇듯 이번 전시에서도 그가 10여 년 동안 기아와 분쟁의 현장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을 선보이고 있다. 아마추어 실력이지만 따뜻한 시적 감수성이 느껴지는 흑백 다큐멘터리 사진전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무기 징역을 선고받고 7년5개월을 복역한 뒤 98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나서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해외로 나갔다. 10년 동안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남미 등의 분쟁·극빈 지역을 돌아다녔다. 총알과 포탄, 가난과 굶주림이 도사리는 마을과 마을을 지나며 ‘이들의 진실을 담는 데 시로는 미약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사진에 문외한이었지만 ‘똑딱이 카메라’를 들었다.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도, 강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카메라였다. 나는 실패한 혁명가로서 슬프게도 길을 잃었고 절망해야 했다. 세계화의 모순이 가장 날카롭게 내려꽂힌 그곳들이 곧 세계사의 중심이었다. 우리가 아플 때 그곳이 몸의 중심이듯이 말이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10년간 13만여 장, 이번 전시에 사용된 사진은 160장이다. 사진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 그는 시를 쓰듯 카메라를 들었다. 마음으로 느끼지 않는 것을 향해서는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고 한다.

“낯선 곳을 갈 때마다 ‘수염 난 테러리스트’나 수니파, 헤즈볼라 등으로 수없이 오해되며 고초도 여러 차례 겪었다. 그러나 매일의 일상이 총탄과 폭격에 노출된 사람들을 두고 제 목숨에 위협이 있었다고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 강대국들이 총칼로 그어놓은 국경선을 걸어가는 난민들처럼 나도 유랑의 시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가 이번 사진전에 내 놓은 사진들은 이스라엘의 침공 직후 폐허가 된 레바논의 한 마을에서 만난 13세의 소녀, 수천 년을 살아온 평화로운 마을에 이스라엘 탱크가 몰려오고, 광야의 자기 집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여인은 울면서 걷는 모습, ‘분나 세레모니(커피의례)’로 시작되는 에티오피아의 아침, 석양이 물든 누비아 사막에서 종려나무를 심는 사람. 옥수수 막걸리를 마시며 두레노동을 하는 안데스 고원의 농부들,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된 볼리비아의 갱도 입구, 체 게바라가 총살당한 ‘라 이게라’로 가는 길 등 모두 오랜 식민지배와 수탈의 상처 위에 다시 세계화의 모순이 날카롭게 꽂힌 가장 아픈 역사 현장의 모습들이다.

다시 시집이야기로 돌아오면, 이번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는 박노해가 10여 년의 침묵정진 속에서 육필로 새겨온 5천여 편의 시 중에서 300편을 묶어낸 것이다.

박노해 시인은 지난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고흥에서 자라났다. 16세 때 상경해 낮에는 노동자로 섬유·금속·정비 노동자로 일했으며, 경기도 안양에서 서울 개포동까지 운행하는 98번 버스를 몰면서 학비를 벌고 밤에는 선린상고(야간부)를 다녔다.

현장 노동자로 일하던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했다. 군사정부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된 이 한 권의 시집은, 한국 사회와 문단을 충격적 감동으로 뒤흔든다. 그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리며 한국민주화운동 시대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이렇듯 우리 시대의 ‘저주받은 고전’인 ‘노동의 새벽’(1984)으로 문단을 경악시키고, 민중의 노래가 됐으며, 세상을 뒤흔들었던 박노해 시인.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1997), 옥중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1997)와 ‘오늘은 다르게’(1999), ‘겨울이 꽃핀다’(1999)를 출간한 이후, 그는 지난 10여 년 동안 긴 침묵의 길을 걸어왔다.

“말할 때가 있으면 침묵할 때가 있다. 누구나 옳은 말을 할 수 있을 때는 지금, 삶이 말하게 할 때이다.”

민주화가 되고 자유의 몸이 된 후,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고 싶지 않다’며 박노해 시인은 홀로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의 현장에서 글로벌 평화나눔을 펼치는 한편, 지구 시대의 인간해방을 향한 새로운 사상과 실천에 착수해왔다.

이후 1989년 분단된 한국 사회에서 절대 금기였던 ‘사회주의’를 천명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했다. 1991년 7년 여 수배 생활 끝에 체포돼 24일간의 참혹한 불법 고문 후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형에 처해졌다.

이후 그는 ‘실패한 혁명가’로서 정직하게 절망하며 시대 변화에 맞는 성찰과 쇄신을 통한 새로운 진보이념과 운동을 처절하게 참구해왔다.

이념이 실종되고, 신념이 살해되고, 희망의 주체가 사라져버린 ‘저주 받은 자유의 시대’에서 박노해는 이번 시집을 통해 다시 혁명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집의 시공간은 넓고도 깊다. 그가 발바닥 사랑으로 걸어다닌 국경 너머 대륙의 넓이만큼 넓고, 그의 정직한 절망과 상처와 슬픔과 기도만큼 깊으며, 참혹한 세계 분쟁현장과 험난한 토박이 마을의 울부짖음과 한숨만큼 이 시집의 울림은 크다.

가난하고 짓밟히는 인류 약자와 죽어가는 생명을 끌어안고 국경없는 적들의 심장을 찌르는 비수 같은 시편들, 세계 고대문명의 시원을 거슬러 오르며 길을 찾아 헤맨 지구시대 유랑의 시편들은 가진 자들에게는 서늘한 공포와 전율을, 약자들에게는 한없는 위안과 희망을, 우리 모두에게는 충격적 감동과 뼈아픈 성찰을 안겨주고 있다.

◆약력

1958년 전남 함평 출생.

1976년 선린상업고등학교 야간부 졸업.

1983년 ‘시와 경제’ 제2집에 ‘시다의 꿈’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1985년 서노련(서울노동운동조합)활동, 월간 ‘노동해방문학’ 주도.

1988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결성, 중앙위원으로 활동, 제1회 노동문학상 수상.

1989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결성주도.

1991년 사회주의 혁명을 목적으로 한 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안기부에 검거, ‘반국가단체 수괴’로 무기징역을 선고.

1992년 ‘노동의 새벽’으로 시인클럽 포에트리 인터내셔널 로테르담재단 인권상 수상.

1993년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 발간.

1997년 세 번째 시집 ‘사람만이 희망이다’ 발간.

1998년 8월 15일 정부수립 50주년 경축 대통령 특별사면 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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