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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더] 김혜령 작가

작품에 표현된 기억의 거울 나와 타인 이해하는 출발점

 

미술계의 새로운 샛별로 등장한 김헤령 작가가 이달 3~26일 안양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에서 전시회를 연다. 김혜령(26) 작가는 이름을 알리는 작가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오로지 그림으로 승부한다. 이번 김 작가의 ‘경계의 숲’ 展은 불쾌한 꿈에서 깨어난 직후 잔상처럼 남은 꿈의 기억을 조각조각 모아 재구성한 편집된 산수를 선보인다.

동양적 재료를 베이스로 하는 작가는 조선시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연상시키듯 몽환적인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선악이 구별되지 않는 괴이한 사물과 형상들을 중력이 소실된 혹은 뒤죽박죽으로 엉켜버린 공간에 배치해 눈길을 끈다. 그 공간에는 인물과 동물 그리고 숲이 주로 등장하는데 이 세 가지의 요소가 ‘경계의 숲’을 이끌어나가는 단서로서 자리잡고 있다.

“작업에서 표현된 객체와 공간은 이러한 고통의 순간을 마주할 때 생성되는 찰나의 풍경이자 잠재돼 있는 기억의 거울과 같다. 욕망을 해소하고 외부로부터의 상처들을 치유하고자 하는 행위 조차 무의식적으로 현실의 가치와 규범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작업을 통해 풀어내는 것 자체가 내게는 치유의 시작이자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은 작가의 이전 작업과 형태적, 소재적으로 적지 않은 차이를 갖고 있다. 과거의 작업은 주로 비이성적 차원의 공간에 스스로의 자화상을 그려 나가는 작업이었다. 사각형의 방안에서 홀로 또는 복제된 이미지의 아이들이 수영복을 입고 목적 없는 놀이를 행하는 등의 몽환적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또 순간의 망상이나 상상력을 통한 작가 개인의 불안한 심리상태와 감정을 표현한 그의 작업은 꿈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만 같은 지극히 개인적 일상의 번안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번 작업에서 작가는 현실에서 이탈돼 고립된 외톨이의 모습에서 탈피해 조금 더 집단과 사회적 관점으로 다가가기 시작한다.

초점이 상실되고 불확실한 삶을 영유하는 불특정 다수의 세상인 모호한 경계의 숲을 설정해 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잔혹동화를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경계의 숲’에서 보여주는 ‘Repair’(2007)와 ‘낯선 숲’(2010)은 이전의 ‘Lost’시리즈의 불안감과 방황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붓을 한번 빨아낸 듯 연한 수묵담채는 중첩돼 견고한 밀도를 보여준다.

공간은 나무, 혹은 숲의 이미지가 반복돼 등장한다. 마치 고개지의 낙신부도권처럼 여러 번 등장하는 주체는 시선의 이동에 따라 서사성을 띠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작품 안에서는 시선의 이동이 주체 스스로 움직이듯 느껴지는 모습에서, 어쩌면 다시 곧 떠나버릴 것 같은 일말의 불안함의 여운을 남긴다.

이같이 김혜령 작가의 동양화 작업은 종이 위에 엷은 수묵이 종이에 스며들어 겹겹이 공기를 품고 있는 듯 하다.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개인의 내밀한 공간은 결코 조용하거나 단순하지 않다. 그 곳은 늘 명료하게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유기체로 이뤄져 있고 외부로부터의 작은 침투에도 파동을 일으키며 불협화음을 낸다. 억눌렸던 기대와 욕망, 행복, 증오, 질투, 수치심 등이 뒤섞인 이 혼란스러운 무엇과 마주 대해야 하는 순간, 어디에도 정박하지 않은 채 모호한 정체성을 띈 자신을 바라보는 일은 고통이 된다.”

그가 말하는 만화경의 거울이미지처럼 대칭적으로 등장하는 나무와 숲은 ‘결국엔 찾았다’싶은 감정의 안식처일까?

거울을 바라보며 비춰진 이미지에 자신을 동일시 하지만, 이미지와 ‘현재’ 사이의 ‘갭’에서 느껴지는 소외감 또한 느끼는 것이다.

상상 속 거짓된 이미지와 욕망이 현실과 연결되면서, 그 간극에서 발현되지 못한 욕망은 다소 공격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거울 이미지가 하나의 구처럼 보이는 공간부터, 점점 화면을 가득히 채워가는 공간이 작가 내면의 공간을 뜻 하는 것일 까.

좁고 넓은 화폭 안에서 다양하게 반복되는 이미지는 마치 끝이 없는 미로같이 느껴진다. 거울에 비춰진 모습과 가까워지기 위해 끝없이 다가가지만 결코 채워질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과 끝이 불분명한 반복된 이미지 안에서 세밀하게 보여주는 미세한 변화들(부러진 나무, 혹은 등장 인물들)의 다양한 모습들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미지의 기묘함을 더욱 불안하고 위태롭게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는 안과 밖, 위, 아래를 가로지르는 ‘경계’선의 숲에서 공간을 포함한 모든 것은 정의 내리기 불분명해진다. 다만 위태로움이 움트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작품은 기묘한 숲의 이미지에서 소설 파리대왕의 배경을 떠올릴 수 있다. 15명의 소년이 표류하게 된 소설 속 무인도의 숲은 야만과 원시로 가득 차있다. 천진난만한 소년들이 서로를 사냥하는 숲이 되어 버리듯, 나의 작업은 숲의 공간에 들어온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 날 뛰고 있는 것이다. 이 전시를 바라보는 관람객들이 한번쯤 ‘경계의 숲’안에 갇혀버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면 나의 의도가 정확히 전달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경계의 숲’. 그가 말하는 건 그 안에서 벌어지는 드라마, 등장하는 존재들의 행위가 공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상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감정들이 완벽히 대칭되는 것이 아닌, 계속되는 작은 변화들은 작품 속 세계가 아직도 진행중임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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