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문화리더] 소설가 김용만

“칠십 인생 七割은 고통과 허무 내 삶의 투쟁은 소설의 모티브”

 

사람은 저녁이 아름다워야 한다. 소설가 김용만(70)씨가 그렇다.

 

 그는 나이 쉰 둘이던 1992년 ‘갈퀴로 돈을 긁던’ 서울 구로공단 5거리 ‘춘천옥’을 과감히 정리하고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양평 산동네로 잠적했다. 이른바 ‘석가헌(夕佳軒)’을 짓고 소설 쓰기란 ‘배냇짓’에 들어갔다. 칩거 이듬해 그는 첫 소설집 ‘늰 내 각시더’(1993년)를 출간했다.

 

이 소설이 나오자 문단은 ‘소설가 김용만이 10년 이내에 기라성같은 국내 작가들을 모조리 잡아먹을 것’이라는 극찬이 쏟아졌다. 예서 그치지 않았다. 2권짜리 장편 ‘인간의 시간’(문이당)과 장편 ‘칼날과 햇살’(중앙M&B), 소설집 ‘아내가 칼을 들었다’(랜덤하우스), 산문집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과 내 허튼소리’(1997년 랜덤하우스)를 잇따라 발표하며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어 지난해 단 시일 내에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업체로 키운 그 전설의 ‘춘천옥’ 성공 리얼스토리를 담은 ‘춘천옥 능수엄마’(JANA문학사)와 올 8월 ‘엄마의 가상공간’(JANA문학사)을 펴냈다. 또한 그는 올 6월, 자신이 칩거해온 양평군 서종면 문호3리 860-2번지 바로 이 터에 ‘잔아 문학박물관’을 열었다. ‘준(準) 재벌’을 이룰 수 있었던 보쌈과 막국수의 사업체인 ‘춘천옥’을 집어치운 지 꼭 18년만의 일이다. 그의 아내 여순희(60)씨와 함께 그의 표현대로 다시 한 번 ‘반역’에 나선 것이다. <편집자주>

가을 볕이 따사롭던 지난 12일 그를 만났다. 그리 어렵지 않게 양수리 북한강변을 따라 박물관을 찾았다. 3천여평의 너른 정원의 산 기슭 2동(棟)의 박물관으로 오르는 왼쪽 편 그의 집필실에서 문학과 인생에 대해 2시간여 동안 얘기를 나눴다. 그는 ‘춘천옥 능수엄마’부터 말문을 열었다. “이 이야기는 7~8년전 두 곳의 모 중앙 일간지에서 책으로 내자고 했지만 거절했죠. 하지만 나의 쓰지 않을 수 없는 체험담이어서 뒤늦게 정리해서 한 권의 책으로 낸 것이예요. 출간하지 1년이 넘은 요즘도 심심치않게 ‘너무 감동적으로 읽었다’면서 전국 각처에서 감사의 전화가 끊이지 않아요. 만약 제가 불꽃처럼 타오르는 문학의 욕망이 없었다면 ‘콘 돈’을 벌었을 거예요. 문학이란‘욕망’ 앞에서는 돈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죠”

그다운 답변이다. 이 소설은 자신이 겪어온 파란만장한 좌절과 슬픔이 어떻게 축재(蓄財)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웅변하고 있다.

또 그의 작품이 거의 그렇듯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얻은 생생한 체험들이 흥미롭게 녹아 있다. 책을 잡자마자 누구나 속도전으로 박진감 넘치게 한 숨에 읽고 소설 속 등장인물이 살아 움직여 금방이라도 저자거리의 ‘춘천옥’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기막힌 인생역정이죠. 저의 칠십 인생의 칠할(七割)은 눈물이고 고통이고 허무입니다. 이 허무가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어떤 필연성을 부여했어요”

그는 충남 부여가 고향이지만 평생 고향을 등지며 살았다. 불목하니(절에서 밥 짓고 물 긷는 일을 도맡아 하는 절 머슴)인 아버지와 눈이 어두운 어머니 사이에 6남매 중 막내 외아들로 태어났다. 지독한 가난의 굴레를 뒤집어 쓰고 자랐다.

그 스스로도 ‘태어나서 미안한 존재’라고 말한다. 땔나무를 팔아 용케 부산중 용산고를 나왔다. 명문 사립대에 입학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포기하고 먹고 살기 위해 1963년 경찰에 들어갔다. 강원도 최북단 거진 임검소, 강릉경찰서 유치장, 서울 동대문경찰서 정보형사로서 서울대 시위현장의 채증반원으로 근무했다.

하지만 1972년 솟구치는 문학의 열정은 경찰 생활의 마침표를 찍는다. 또다시 냉엄한 가난의 현실에 맞닥뜨린다. 이후 부산 대구에서 자동차 광택사업에 뛰어들어 돈을 만져볼 찰나 공장에 불이 나고 도박판에 끼어들어 거리에 나앉는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공사판 인부, 리어카 배추장사, 길거리 포장마차 등 밑바닥 생활을 하다가 1982년 ‘춘천옥’을 차리며 삽시간에 전국 최고의 ‘명소’로 키웠다.

가히 눈물겨운 삶의 투쟁이다.

“성장기의 가난, 비참한 노동, 자살충동, 늦깍이 대학생, 늦깍이 작가, 부모님의 참담한 죽음은 모두 내 최루제였지만 그것들은 내 소설의 공급원이고 에너지고 모티브였어요”

첫 소설집 ‘늰 내 각시더’는 강릉경찰서 유치장에 근무할 때 어느 엽기 살인범의 이야기이고, 동해안 최북단 거진 임검소와 강릉 사천진 진리 포구 임검소 근무 때 북상하던 무장공비들을 다른 것이 ‘칼날과 햇살’이다. 그가 걸어온 고난의 가시밭길이 문학의 텃밭을 기름지게 일궈준 자양분이 된 것이다.

“동해안의 경찰 생활은 소설의 구체적인 제재를 공급하는 데 이바지한 셈이죠. 무엇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어떤 충동을 유발시킨 거죠. 그 충동이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죠”

그의 소설은 한결같이 소외된 계층을 부각시키고 허무와 슬픔을 삶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

이런 밑바닥 인생에서 처절하게 느끼면서 발견한 것이 바로 ‘진실된 인간성 추구’라는 ‘작가 정신’이다.

“소설은 독자를 감동시킬 때만 문예창작의 교시적 기능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진실없이 감동 유발은 없다. 앙파 껍질을 벗겨보라. 알맹이가 없다. 그 알맹이를 찾아 껍질을 벗겨야 한다. 지구의 양파를 다 모아서라도 벗겨봐야 한다. 소설 쓰기는 인간성 탐구다”

그는 이 ‘소설의 진실된 인간성’을 문단의 타락에 빗대 ‘죄(罪)와 야비(野卑)’로 설명했다.

“진실을 말하려면 타락에 대한 해석이 선행돼야 한다. 개념부터 정리하면 죄는 한 마디로 철없는 무작위적 타락인데 반해 야비는 철든 작위적 타락으로써 타락이 뭔지 잘 알면서 타락했기 때문에 구제가 불가능하다”

그는 쉽게 색깔에 비유해 더 격하게 쓴소리를 했다. “죄(罪)의 색은 검고 흰 단색밖에 낼 수 없지만 야비(野卑)의 색은 천연색과 같아서 자유자재로 변색할 수 있기 때문에 화려한 미덕의 색을 잘 흉내 낼 수가 있다.

그래서 야비(野卑)는 진실한 척, 겸손한 척, 의리 있는 척하고 잘 속일 수 있기 때문에 악(惡) 중의 악이요, 독(毒) 중의 지독(至毒)이다. 죄는 법으로 옭아맬 수 있지만 야비(野卑)는 죄보다 더 해롭다” 그의 단호하고 명쾌한 ‘타락’에 대한 체험적 해석이고 그의 작품 대다수가 이를 근저에 두고 쓰여졌다.

그는 요즘 ‘잔아’란 인물을 소재로 작품을 쓰고 있다. 올 8월 중편소설 3편을 묶어 펴낸 ‘엄마의 가상공간’이란 책에서 소개했지만 이를 보완해 장편으로 낼 계획이다.

‘잔아’는 작품 속 재기발랄한 20대 초반의 여성이다. 그녀와 자신의 삶에서 공통적으로 성장한 ‘악의 원형’을 행복, 기쁨, 즐거움, 삶의 환희, 삶의 본질과 내면을 이끌어내는 작업이다.

그는 또 ‘세계문학관기행’을 단행본으로 낼 계획이다. 이미 서정시학이란 시전문지를 통해 3년간 발표해 왔는데 이를 한 권으로 묶는 것이다.

전 세계 90여개국을 돌며 푸쉬킨(러시아), 세르반테스(스페인), 찰스 디킨스(영국), 헤밍웨이(미국), 도스토예프스키(러시아), 빅토르 위고(프랑스), 에밀리 브론테(영국), 존 스타인벡(미국) 등 13인의 세계적 문호들의 작품과 인물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는 철들지도 않은 10대 초교시절부터 지금까지 무려 60여년간 일기를 써오고 있다. 이 기록이 그의 체험적 작품에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으면서 당시의 생생한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는 연대기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일기의 한 켠에서 비장하고 섬뜩한 각오를 발견했다. “사랑하는 여자와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 팔자라면 지금 당장 한강에 투신하겠다” 고2 때 어느 날 적어 놓은 그의 일기의 한 부분이다.

그는 소설가의 책무를 이렇게 정의한다. “작가는 아무리 가벼워질 수 밖에 없는 시대사조라 해도 무거움을 등에 지고 살아가야 한다. 학습만을 통한 지식은 기반이 허약하다. 자신의 사유와 체험을 통해 진리를 만나고 싶어하는 그 외롭고 고단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창작은 누가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운명을 걸고 도전하는 그 외롭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소설가를 꿈꾸는 젊은 지망생들에게 들려주는 고언이기도 하다.

※ 약 력

 


- 충남 부여 출생

- 부산중, 용산고, 광주대 문예창작과

- 경희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 서울한성디지털대학교 방송문예과 교수

- 경기대학교 국문과 초빙교수

- 소설가협회 자문위원 겸 중앙위원

- 민족문화작가회의 이사

- 국제펜클럽 이사

-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 독서신문 논설위원

- JANA문학사 대표

- 한국농민문학회 부회장

- 잔아문학박물관 대표

◆ 작품 및 수상

- 1989년 중편 ‘은장도’로 현대문학 등단

- 1989~1992년 ‘보이지 않는 시계’(현대문학), ‘잔인한 단풍’(동서문학), ‘속도에 관하여’(문예중앙), ‘그리고 말씀하시기를’(한길사), ‘도벌단속’ (실천문학), ‘악마의 원형을 찾아서’(불교문예) 등 단편 및 중편 발표

- 1992년 첫 소설집 ‘늰 내 각시더’(실천문학) 발간

- 1993년 ‘칼날과 햇살’(중앙M&B)

- 1993년 ‘인간의 시간’(문이당)

- 1997년 산문집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과 내 허튼소리’(랜덤하우스)

- 2003년 ‘아내가 칼을 들었다’(랜덤하우스)

- 2009년 ‘춘천옥 능수엄마’(JANA문학사) 2010년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선정

- 2010년 ‘엄마의 가상공간’(JANA문학사) 제23회 경희문학 수상

- 국제펜문학상

- 동아시아 문학상, 박영준 문학상, 유승규 문학상, 농민문학대상 수상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