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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 학교는 왜 있는가?

 

“수능을 앞둔 교실에 교과서는 보이지 않고 온통 EBS 교재뿐이었다.” 하필 ‘교과서를 더 잘 만들어보자’는 워크숍에 참석한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의 한탄이었다. 학교는 왜 있어야 하고 교과서는 왜 필요한지, 교육의 근본에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수능 문제, EBS 교재에서 70% 이상 연계 출제’ 시책이 실현됨에 따라 학원들이 EBS 교재를 집중분석해 가르칠 수 있는 새로운 사교육 시장 발견으로 ‘조용히 웃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그날이었다.

그 선생님은 덧붙였다. “자율형 사립고, 기숙형 공립고, 혁신학교, 사교육 없는 학교, 학력향상 중점학교와 같은 각종 자율학교는 국가 교육과정의 시간배당기준을 그대로 지키지 않고 입시 준비에 유리하도록 조정 운영할 수 있는 재량권을 주고 있다. 게임이 되지 않는다. 우리 학교도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자율학교 지정을 받으려고 애쓰고 있다.”

‘사교육비 감축’ ‘학교 간 경쟁력 제고’ 같은 시책 구현에 주력한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 현안 해결에 치중하면 꼭 부작용도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사교육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농산어촌 학생들에 대한 배려, 천정부지의 사교육비를 줄여보자는 시책으로 EBS 교재가 교실까지 ‘침투’하고, 학교의 경쟁력을 높여보자는 자율학교 지정이 이젠 교육과정 기준을 지켜야 하는 일반학교를 궁색한 입장으로 ‘전락’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기준을 그대로 지키기보다는 자율권을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도출됐다면, 왜 그 기준을 ‘지켜야 하는 기준’으로 남겨두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학생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진로 개척 능력과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데 중점을 둔다’는 것이 고등학교 교육의 목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교육목표는 말할 것도 없다. 학교 교육목표의 어디에서도 ‘EBS 교재가 교과서의 자리를 차지하는 교실’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그런 교실은 법규에도 어긋나는 교실이다.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제3조제1항)에 따르면 학교의 장은 각 교과목을 가르칠 때 국정도서가 있으면 국정도서를, 국정도서가 없을 때에는 검정도서를 선정·사용해야 하고, 국·검정 도서가 없는 경우 또는 이를 사용하기 곤란하거나 보충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인정도서를 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엄연한 대통령령이다.

“문제풀이로 박제화 된 학교수업, 일방적으로 설명해주는 학교수업으로는 수학의 원리 이해가 어렵다”면서 시간이 걸려도 스스로 원리를 찾도록 지도한다는 어느 학원의 프로그램이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일상생활에서 의문점을 찾아 조별로 토의하고, 전체토의를 통해 원리를 익히고 유용성을 깨닫게 하면서 사고력을 높인다는 그 방법은, 학교에서는 당연히 실천해야 하는 기본적 수업방법이다. 국가 교육과정에서는 평범한 교육방법에 지나지 않는 일반적 사례일 뿐이다. 그럼에도 지금 학교에선 방치하거나 소홀한 수업방법을 학원에서 도입해 호응을 받고 있다는 것은 기가 막히는 일이다. 하기야 자기주도적 학습, 부진학생 맞춤지도가 학교에서는 어렵고 학원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홍보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가능성을 찾아 기대를 갖고 싶은 것이 교육이다. 교육만이 우리의 길을 밝혀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자문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는 지난 19일 ‘국격 제고, 세계 중심 국가를 향한 인재육성방안’으로 ‘주입식 및 이론 중심에서 실험·현장 등 실생활 위주의 탐구 및 문제해결능력 제고로 학습방식 개선’ ‘수학·과학의 경우 물리, 지구과학 등 개별 교과목 수업이 아닌 통합교육 실시’ ‘영어 등 언어영역의 말하기·글쓰기 중심교육으로 개편’ 등을 보고했다고 한다.

교사가 수업시간의 3/4 혹은 9/10를 써서 설명하는 수업, ○× 표시를 하고 네다섯 개 답지 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겨우 단답(短答) 몇 개를 써넣는 문제풀이식을 버리고 수업시간의 3/4 혹은 9/10를 학생들에게 돌려주는 수업으로 바꿔야 한다. 학교는 왜 있는가? 사교육 업체나 EBS 방송과는 차별화된 답을 내놓아야 한다. 학교는 사교육 업체도 방송국도 아니기 때문이다./김만곤 한국교과서 연구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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