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아침단상] 익명(匿名)의 폐해(弊害)

 

남자들끼리 모이면 군대 생활을 아무리 허풍을 쳐서 떠들어도 뻔한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듣는 척 해준다.

희망에 허풍을 포장하기 때문이다.

집에 금송아지 있다는 것은 비교적 애교 있는 허풍이고, 입대전 근무지가 동리 이발관이 호텔 이발부로, 변두리 자장면집이 호텔중식당으로 몇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다.

그르려니 웃고 넘기는데….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남자들의 수다인 ‘군대 이야기’이다.

월남 스키부대(?)에서 베트콩 잡던 일, 탱크를 빨리 몰다 과속 딱지 끊긴일…, 황당한 예가 한둘이 아니다.

어찌됐던 힘들었던 군대생활이 재미있고 그리운 이유는 공평(公平)함에 있다.

부자이던 많이 배운 사람이던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침상(寢牀)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억울함이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환경의 공평함이 도외시 됐다면, 이처럼 과거가 그리울 수 있을까?

그러나 외적(外的) 억울함보다, 등 뒤에서 꽂히는 비수내적(內的) 억울함이란, 감당하기 힘든 법이다.

일본 속담에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글을 쓰면 반드시 낭패를 보는 사람 있기 마련이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행위를 남에게 들키지 않게, 남의 약점을 그럴듯한 포장을 해서 밀고(密告) 하는 것.

투서(投書)란 드러나지 않는 사실의 내막이나, 남의 잘못을 사실화하는 방법인데…, 항상 익명(匿名)의 그늘에서 숨어 있다.

억울한 일 바로 잡아달라는 소극적인 저항행위라고 좋게 봐 줄 수도 있지만, 숨어서 등 뒤에서 칼을 꼽는 비열한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누가 해코지 하는지 도대체 알 수 가 없다.

남이하면 스캔들, 자기가 하면 로맨스 이 말을 바꾸면 자기가 하면 진정(陳情), 남이하면 투서.

올해 우리나라 전체 사건 가운데 고소·고발이 28%인데 일본은 0.5%, 결국 50배가 넘는다.

형사사건의 기소율은 50%인데 비해, 고소·고발의 기소율은 18%라고 하니,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하더라도 82%는 죄없이, 억울한 일을 당한 셈이다.

법률적으로 피고소인은 피의자 신분이 되고 보니, 파출소 한번 드나들지 않는 사람이 철(鐵) 의자에 앉아서 소위 조서를 꾸며야 하고, 좁은 동네에서는 금방 소문이 나서 범법자(犯法者) 취급을 받게 되고, 학교 다니는 자녀라도 있을 경우…, 상상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

익명이 갖는 특징은 사회전체를 모질게, 독하게 만든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기 생각이 절대적(絶對的)이라고 간주(看做)하면 약간의 불이익마저 익명이 갖는 대담함 때문에 진정이나 투서의 유혹에 쉽게 빠져든다.

단정한 양복에 교양있는 말투의 신사가, 예비군 복장을 입으며 길 가던 처녀들에게 휘파람을 불고, 거리에 침 뱉는 몰상식한 모습을 가끔 보는데, 이것도 익명의 뒤에 여러 무리 혹은 단체 뒤에 숨어서, 치기를 발산하게 된다.

컴퓨터시대의 대표적인 역기능인 소위 악플로 인해 목숨을 버리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디지털시대의 주홍(朱紅)글씨라고 할까.

자신이 당당하고, 자기가 떳떳하면 익명이 아니고, 신분을 밝혀야 한다.

과거 조선시대에도 도호부(都護府)에서 군(郡)으로 강등되는 이유가 역모(逆謀)를 꾸몄다던가, 중대한 윤리 도덕을 어기는 사람이 태어난 고을, 그리고 투서가 많은 고을.

예부터 이처럼 사람의 투서를 비천(卑賤)한 행위로 간주했거늘….

무고, 투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무원들이 동원돼 시간과 금전을 쏟아 부어야 하는 이것은 엄청난 혈세(血稅)의 낭비, 한해가 마감하려고 한다. 꿀을 얻으려고, 벌통을 발로 걷어차는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책임을 물었으면 좋겠구나.

이것도 국격(國格)과 관계되는 크나큰 조건. /김기한 F&B 교촌치킨 부회장·前 방송인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