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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현칼럼] 졸업은 새로운 학업의 시작

 

초등학교 졸업식은 그동안 정들었던 친구들과 헤어진다고 생각해서인지 슬픈 분위기가 감지된다. 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구성원을 바꿔가며 고학년으로 올라가지만 대부분 얼굴을 알고 지내는 사이가 많다. 호랑이 선생님이 평소에 무섭게 대해주긴 하지만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앞서는가 보다. 반세기가 흐른 요즘도 초등학교 졸업식은 운동장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경우가 종종 목격되곤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공부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강압적인 학교 분위기에 숨을 죽이며 지내온 탓인지 중.고등학교 졸업식은 사못 다르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결단을 내고 말겠다는 막장 분위기다. 일부 고등학교의 경우 3년동안의 고독과 폐쇄, 복종, 강제 분위기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만끽하려는듯 모든 것을 던져버린다. 밀가루 흩날리는 교정에서 머리에 토마토 케찹을 뒤집어 쓴 졸업생을 목격하는 일은 쉬운 일이 되었다.

요즘은 일탈의 강도가 점점 더해간다. ‘알몸 뒤풀이’와 ‘폭력 뒤풀이’가 추가됐다. 본격적인 졸업 시즌을 앞두고 교육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일탈 행위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졸업식 직후 해당 학교 교사 전원을 주변지역 순찰에 투입키로 하는 등 즐거워야 할 졸업식이 전투장으로 변질돼 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졸업식 전에 졸업예정자와 재학생을 대상으로 졸업생의 옷을 찢거나 얼차려를 주는 등의 행위는 공갈, 폭행, 강제추행 등의 범죄라는 내용을 교육하고 뒤풀이를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 학생들은 미리 파악해 관리하기로 했다. 앞서 경기, 충남교육청 등도 비슷한 대책을 발표했다. 경건해야 할 졸업식이 어쩌다 당국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졸업식 일탈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전에도 졸업식장 주변에선 속박의 상징인 교복을 찢고 계란이나 밀가루를 뒤집어씌우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당시 이런 행위가 문제 되지 않았던 것은 폭력성을 띠지 않은 가벼운 뒤풀이였기 때문이다. 자발적인데다 물리적으로도 심각한 피해를 유발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규율과 통제 속에 보내야 했던 학교생활에서 드디어 벗어나게 된 데서 오는 ‘졸업의 해방감’을 다소 거칠게 표출한 행위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문제가 불거진 광적인 뒤풀이는 사정이 다르다. 남녀 졸업생 가릴 것 없이 무더기로 옷을 벗기거나 부동자세를 한 졸업생을 선배들이 돌아가며 주먹질을 하는 등 성적 학대와 폭력 행위가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폭력을 넘어 성적 학대 수준으로 치닫는 최근의 뒤풀이 행태는 다수의 위력으로 약자에 대해 막무가내식 위해를 가하는 범죄행위일 뿐이다. 알몸 뒤풀이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피해 학생들의 얼굴이 노출되게 한 행위도 마찬가지다. 교육 당국이 탈선행위를 막기 위한 긴급 대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경기도교육청은 건전한 졸업식 문화를 정착시키고 학생들의 일탈행위를 막고자 경기지방경찰청에 협조공문을 보냈다. 경찰에 협조를 의뢰한 사안은 교외 합동 생활지도, 학교별 담당 경찰관 배치, 취약지역 순찰, 졸업 당일 배회학생 귀가 지도, 유해업소 학생 출입 단속 등이다. 인천시교육청은 졸업식 뒤풀이로 교복을 찢는 경우가 있어 중.고교에 졸업식장에서 교복 대신 사복 착용을 권장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교육지원청이 건전한 졸업식을 유도하기 위한 T/F팀을 가동한데 이어 일탈방지 매뉴얼을 각급 학교에 보급하는 등 ‘졸업식 알몸 뒤풀이’ 재발 방지에 나섰다. 고양교육지원청은 교육청과 학교장, 생활지도담당 교사, 학부모로 구성된 ‘건전한 졸업식 문화를 위한 T/F팀’을 중심으로 올해 졸업식에서 일탈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각종 활동을 펼치기로 했다.

그러나 제재중심의 대책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는 학생들이 졸업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졸업문화 조성이 필요한 것이다. 이 점에서 이번 대책에 학생이 참여하고 기획하는 특색있는 졸업식을 만들어가겠다는 방안이 포함된 것은 바람직하다. 교복 물려주기 바자회, 폭력 졸업식 추방을 위한 UCC 동영상의 제작과 방영, 졸업생과 교사가 함께 출연하는 뮤지컬 공연, 졸업생의 소망을 담은 글을 땅속에 묻는 타임캡슐 봉헌식 등 학교별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졸업식을 일종의 축제로 만들어 추억할 거리를 만들어주면 일탈행위도 자연히 줄 것이 분명하다.

졸업은 하나의 교과 과정을 마친 것을 뜻하지만 달리 보면 새로운 학업의 시작도 의미한다. 성숙하고 건전한 졸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학생 뿐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안병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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