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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聯合)’과 ‘야합(野合)’의 공통점은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개인이나 단체가 하나의 조직체를 이루는 것이고, 차이점이라면 ‘연합’은 ‘일정한 범주 안에서의 공동의 목적 달성’이므로 질서정연하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한다.

반면 ‘야합’은 ‘좋지 못한 목적으로 어울림’이므로 무질서하고 논리 비약적이며 감정적이고 즉흥적 비합리성을 특성으로 하고 있다.

2011년도 벽두에 문화예술단체에서는 임원을 선출하는 사례가 많았다. 인간 사회에서 합종연횡은 자연스럽다. 그 중에서도 선거는 다수결의 원리로 집약되며 그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민주적인 절차 과정으로 핵심이다.

이런 선거 수단을 통하여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도모한다. 대체로 표면적으로는 명분에 합당한 연합을 지향한다. 매우 이성적이고 합목적이며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다. 그러나 내면을 정밀하게 검열할 필요가 있다. 좋지 못한 목적으로 야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연합’이냐 ‘야합’이냐 할 때 객관적으로 편차가 없는 도덕성을 기준으로 삼으면 무난할 것이다. ‘연합’은 질서정연하게 이익의 공통분모를 찾아야 하고 도덕적으로 흠결이 덜하며 일반적으로 조직체가 건전하게 존립할 ‘생명성’을 가진다. 따라서 활기차고 자유로우며 신바람이 절로 나게 된다. 그러나 ‘야합’은 일시적이며 무질서하다. 일시적이라 함은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광기(狂氣)에서 빠져나와 이성적 거울로 자아를 들여다 볼 것이다. 당시에는 달콤한 ‘맛나’였는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불편함을 본질적으로 느낄 것이다. 연합체를 스스로 부정하며 자중지란(自中之亂) 속에서 참회하는 것이 야합의 종결이라고나 할까?

야합은 단기속성을 지향한다. 순발력이 있다. 활화산처럼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내면엔 욕심과 야망이 매 발톱처럼 숨겨져 있다. 인내심이 부족하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참지 못한다. 단기간에 성과물이 손안에 들어오는 것만을 욕망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 심리에 사로잡혀 중심을 잃기도 한다. 선거로 결정하는 대결적 상황에서는 주변을 의식하며 조바심을 낸다. 그리고 불리할 것 같으면 무질서를 조성하고 혼란을 연출한다.

마지막으로 상대를 적의 개념으로 규정하고 언술은 삵괭이처럼 무자비하게 짖어댄다. 격한 어조로 핏대를 내세우며 자기합리화를 시도한다. 말로는 고품격을 운운하지만 상당히 비신사적이고 속물적이며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이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타락한 심성을 그대로 드러냄이다. 오만과 편견, 아집과 자기편중적 관점으로 세상을 재단한다.

감히 독선적인 눈을 가졌다고 하겠다.

타락한 ‘야합’이 아닌 질서정연한 ‘연합’이 성공확률도 높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빛날 것이다. 근시안적으로 당장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벌레의 눈으로 그 넓디넓은 세상을 보려는 것은 눈의 시력만 상실할 뿐이다. 새의 눈으로 유유자적하며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가치가 으뜸이며 권모술수적 야합을 멀리 할 수 있는 기준이 될 것이다.

‘야합’에서 묘한 느낌의 충동을 갖는다. 아마도 인간심리는 야성성에 본능적으로 이끌림을 갖게 되나보다. 그러나 냉철한 판단력을 기준으로 하는 ‘연합’에서 최후적 힘을 얻게 된다.

건전한 논리적 힘이 근원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이익에 편중된 가치, 물욕에 사로잡히다 보면 냉정한 눈을 상실하여 결국 후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것이다.

인간사 수많은 사건과 사건의 연속적 상황에서 연합적 결합으로 새롭고도 진정한 이정표를 세울 수 있는 혜안(慧眼)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진춘석 시인·평택한광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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