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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내 작은 삶’을 소중히 간직합니다

 

시간은 생각하지 않아도 잘 흘러가고 있다. 언제 어디에 있어도 자기의 직분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그 임무에 충실하다. 손발도 눈코도 없는데 이 순간 도도히 잘도 가고 있다.

‘짹깍 짹깍….’ 고요함을 깨우는 초침을 듣노라면 전율 같은 희열 속에 내가 갇혀버리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그 누가 말했던가, ‘촌음을 아껴 써라’란 말을….

창밖의 아침 햇살 속에 일곱점(7시) 시간을 응시하고 몸을 일으킨다. 갈 곳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시간은 나의 일상에서 늘 나를 긴장시키고 안내한다. 나를 기다리는 그들이 있어 행복한 날이다. 시간과 더불어 나이테를 두르고 지금껏 버티는 큰 나무 같은 사람들, 그들과 만나기 위해 부지런히 걷는다. 칠십을 넘어 팔십을 넘어, 고개마다 눈물이요, 가난이었다고 푸념하는 할머니 학생들과 만나기 위해서다.

가난해서 못 배우고 여자라서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한탄한다. 못 배운 한을 풀어보겠다고 한글을 가르쳐 달라는 그들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다. 그들의 눈빛을 보노라면 기역(ㄱ) 니은(ㄴ)이 무색해진다. 고목처럼 굽고 휘였지만 그들은 집이 되고 어머니가 되어 큰 나무로 버틴 세월의 흔적이 훈장으로 우뚝 서 있지 않는가. 언니같은 학생, 친구같은 학생, 동생같은 학생이라고 깔깔 웃으면 하얗게 바랜 머리칼도 함께 펄럭인다. 자글자글 냇물 흐르는 이마에도 웃음이 넘친다. 돋보기안경 너머로 한자한자 또박또박 쓰고 또 쓰고 그렇게 시간은 함께 가고 있다. 목청을 돋우고 큰소리로 따라 읽는 입모양을 보노라면 귀엽고 예쁘기만 하다. 간간이 철따라 피고 지는 계절을 노래로 부르면서 봄도 가고 여름도 가고 방학도 가고 가을 겨울도 가고 일년 이년 삼년 어언 십여년이 되어 간다.

“봄이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고마운 바람.”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손이 꽁꽁꽁 발이 꽁꽁꽁 겨울바람 때문에~”

“하하하~ 호호호~” 교실은 언제나 웃음꽃이요, 청춘이다. 행복어르신학교를 열어주신 기관과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과의 시간은 내 삶을 부유케 하고 살아 있어 감사하는 첫 기도의 시간이기도 하다. 함께 늙어가는 동반자이면서도 또 사랑할 수 있고 보살펴 드려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이 절실해 지기도 한다.

삶의 가치가 어떤 것인가. 죽음을 향해 걷고 있는 노년이 아름다운 것인가. 슬픈 것인가. 눈을 감고 젊은 날의 그 오만불성했던 때를 반성해 본다. 배우면서 승천하는 그들! 나는 그들에게서 소중한 삶의 철학을 배운다. 내일 저승사자가 와도 오늘을 만끽하고 배우는 어르신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울지 말자, 웃고 살자. 내일 죽어도 오늘을 충실히 살자. 마음을 비우고 사랑을 나누며 살자. 많이 배우고 적게 배운 것이 문제가 아니다. 신이시여! 내 작은 기도 들으소서. 그들, 내 사랑 친구들 건강 지켜 주옵시고. 승천의 문턱까지, 배움으로 즐겁게 하소서. 오늘도 그들과의 인연으로 나의 작은 삶은 날마다 윤택해진다.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행복하며 찬란한 무지개를 쫒는 이방인 같은 날개를 편다. /정기숙 시인

▲ 한국문인협회 회원 ▲ 광명문인협회 명예회장 ▲ 광명문학대상 ▲ 광명예술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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