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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이호철 선생에게 노벨상을 許하라!

 

제목에서 다소 즉흥적이거나 도발적이라는 오해의 소지도 없지는 않겠으나, 이호철 선생이 그가 이룬 문학적 성취에도 왜 그동안 노벨상 후보로조차 거론되지 않았다는 것은 의문스럽기 짝이 없다. 여기서 이 글은 출발한다.

얼마 전(13일) 우리 시대 분단문학의 거장인 이호철 선생이 팔순을 맞았다. 우리 나이 열아홉에 혈혈단신 남으로 넘어와 소설가로서 60년 가까이 ‘분단’을 소재로 천착해 온 선생이다. 이제 선배 문인들은 대부분 고인이 됐고, 생존하는 작가 가운데 어느덧 최고참 현역이 됐는데도 지난해 ‘출렁이는 유령들’에 이어 팔순을 맞아 ‘가는 세월과 흐르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냈을 만큼 여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천생 소설가가 이호철이다.

1955년 황순원에 의해 ‘탈향(脫鄕)’과 ‘나상(裸像)’이 추천 완료되면서 문단에 나온 선생은 61년 ‘판문점’으로 현대문학상을, 이듬해인 62년 ‘닳아지는 살(煞)들’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유망작가군의 선두주자로 입지를 다져온 사람이다. 그 뿐인가. 1971년엔 민주수호국민협의회 운영위원으로 참여했으며 이의 연장선상에서 74년 국가보안법위반, 80년 국가 내란음모 혐의로 두 차례에 걸쳐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누군가 나서야 할 자리에는 항상 선생이 있었고, 그는 적어도 정의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초도 마다하지 않았다. 문단의 마당발답게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1985년)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92년에는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는 영예도 누렸다. 앞서의 문학상 외에도 2002년 은관문화훈장을, 그리고 2004년엔 독일 예나대학에서 프리드리히 실러메달을 받았다. 메달 수여는 독일어 등 10개 국어로 번역이 된 대표작 ‘남녘사람 북녘사람’과 ‘소시민’이 한반도 분단에 따른 남북 민중들의 고통과 그 과정에서 피어난 인간애를 탁월하게 묘사했다는 평가와 함께 저간의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선생의 작품은 미국, 일본, 러시아, 유럽은 물론이고 남미 브라질까지 소개돼 호평을 받고 있다. 단적인 예로 2009년 브라질에서 포루투갈어로 번역된 ‘닳아지는 살들’에 대해 상파울루 대학의 조르즈 지 알메이다 교수는 “오늘날 세계적인 단편문학집이 있다면 마땅히 수록돼야 할 작품”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은 것을 들 수 있다.

스웨덴 명문의대인 까를린스카 내과 전문의인 한영우 박사는 노벨재단에서 일하는 유일한 동양인이다. 노벨재단 특임자문역인 한 박사는 현재 노벨상 수상자로 거론되고 있는 한국인이 두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 가운데 선생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나는 여기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한 사람은 그의 몇몇 석연치 않은 과거 행적들로 비춰볼 때 ‘사특한’ 위선이 왠지 꺼림칙하기만 하다. 이를 문단은 안다. 최근 예술원회원을 선출하는 투표에서 낙선한 것 만 으로도 그가 얼마나 문단에서 비(非)호감적인 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런 면에서 대비가 되는 인물이 이호철이다. 그의 문장에는 미문(美文)의 화려한 장식은 없으나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뚝심이 있다. ‘무기교의 기교’인 셈이다.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아, 이 정도라면 나도 소설을 쓸 수 있겠는데’라는 막연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읽기는 쉬워도 독자 입장에서의 다양한 해석과 젊은 평단의 높은 관심은 연륜이 빚어내는 ‘초탈(超脫)한 파격(破格)’이 있기에 가능한 경지다.

지난해 고양시 선유리에서 ‘소설 독회’가 열렸을 때 마을주민들은 회의를 열고 독회에 방해가 안 되도록 경운기 운행을 금지하기로 했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름다운 노년의 그는 잘 어울리는 은빛 수염이 헤밍웨이를 닮았다. 선생의 아호(雅號)는 ‘견산(見山)’이다. 팔순연이 열리던 지난 11일 그에게 헌정된 기념문집의 제목은 ‘큰 산과 나’였다. 무려 87명의 동료, 후배문인 등이 참여했다. ‘사단법인 이호철문학재단’도 이날 발족식을 가졌다. 그렇다면? 그렇다. 이제 이호철에게 노벨상을 허(許)하는 일만 남았다. /이해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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