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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따사로운 오후 눈부신 3월의 햇살이 삶의 풍요로움처럼 포근히 다가온다. 봄을 상징하는 꽃과 나무들, 모든 이들의 시선을 듬뿍 받으며 맘껏 뽐내고 있다. 내 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의 책장을 넘겨 본다. 우리의 첫 만남은 3월의 어느 봄날…. 흐린 회색빛 하늘의 아침이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일요일이면 함께 등산을 다녔는데 그 날은 도봉산으로 갔다. 중턱쯤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산장 밑에 비를 피할 만큼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비도 피하고 점심도 먹을겸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배낭을 풀고 고체연료에 불 붙이고 찌개거리도 만들고 바삐 움직였다. 이때 등산복을 잘 차려입고 우산까지 받쳐든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우산도 받쳐주고 이것 저것 도와 주고 내려갔다.

오후가 되니 날씨가 활짝 갰다. 산 속의 모든 것들이 봄비에 씻겨 상큼한 오후였다. 하산 길에 중턱쯤에서 또 그를 만났다. 선후배들과 같이 있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같이 하게 됐다. 유머도 풍부해서 친구와 나는 배꼽이 달아날 정도로 실컷 웃었다. 성인이 된 후 가장 많이 웃었던 하루였다.

청명한 하늘에 닿을 것만 같던 계곡에 울려 퍼지던 맑은 우리들의 웃음소리는 오랜 세월이 흘러간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게 크게 소리내어 웃을 수 있었던 것도 풋풋한 젊음 때문이었으리라.

어둠이 산자락에 살포시 내릴 때 우리들은 헤어졌다. 그 후 도봉산을 갈 때면 산중턱에 산악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조그만 쉼터에서 그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를 형이라 부르며 함께 산행을 했었다. 그들은 자일을 타는 전문 산악인들이었다. 단둘이 만날 때는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해 여름 함께 설악산 등반을 떠났다. 무더운 7월,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내설악에서 외설악으로 넘어가는 코스가 너무 힘들었지만 흐드러지게 피여 있던 이름모를 들꽃과 신선들이나 놀다 갈것 같은 녹음 짙은 계곡에 투명한 보석처럼 흐르는 맑은 물은 한 여름에도 손이 저릴 만큼 차가웠다.

내설악의 장관인 12선녀탕, 고생 끝에 외설악으로 넘어와 캠프촌에 텐트를 치고 어둠이 잔잔히 깔리는 텐트촌에 마른가지를 주워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동그랗게 둘러 앉아 우크렐라(산에 가지고 다니며 요들송을 부를 때 치는 작은 악기)를 치면서 손뼉치며 요들송을 불렀다. 그 형은 요들송을 잘 불렀다. 고요한 설악의 밤에 계곡물 흐르는 소리 우리들의 노래소리가 메아리 되어 흐르고 젊음은 자연과 하나되어 날이 새는 줄 몰랐다.

그날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가장 잊지못할 아름다운 추억의 밤이었다. 그 형은 친구와 나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만났는데도 말수가 적은 친구보다는 명랑했던 나를 더 좋아 하는것 같았다. 모든 일에 적극적인 성격탓인지 겨우 두번 만났을 때 결혼이야기를 꺼냈었다. 결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게 아닌가 내쪽에서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나를 어느 누구보다도 사랑하는구나 느끼게 되었고 만난지 3년째 되던 해 5월에 결혼해 형이 남편이 됐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아들 딸 낳아 정성으로 기르고 남편의 뒷바라지가 여자의 최고의 행복으로 살면서 때로는 삶의 무게도 느꼈지만 그 옛날 아름다웠던 추억을 떠 올릴 때마다 새로운 삶의 에너지가 생긴다. /허은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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