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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외딴 봉우리/윤사월 해 길다/꾀꼬리 울면/산지기 외딴 집/눈 먼 처녀사/문설주에 귀 대고/엿듣고 있다” 박목월님의 ‘윤사월’이다.

봄날의 향연을 황홀한 외로움이 가슴 깊이 저미도록 형상화한 현대시의 백미(白眉)다. 이 시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74년. 당시 1학년 국어교과서 <권두시>에 실려 있었다. 국어선생이셨던 담임선생께서 낭송과 해설을 하도 멋있게 해주셔서 지금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윤사월의 시심(詩心)이 나의 내면을 오랫동안 관통했나 보다.

그런데 봄날이 되면 왜 이 ‘윤사월’이 나의 뇌리 속에 오토리버스처럼 지나고 있는 걸까? 아마도 어렸을 때가 그리웠나보다. 봄날 색의 향연이 펼쳐지던 날, 그 왕성한 연초록의 그늘에서 풍뎅이들의 소리를 들으며 저 산 너머를 한없이 동경하던 때가 있었다. 외로움이 상상력을 키웠고 산 너머 세계를 얼마나 가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제야 생각해보니 그 가고 싶은 산 너머를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에서 ‘산 너머’는 동경의 세계였다. 말하자면 그 무수한 산 너머를 넘어왔지만 지금도 내 앞에는 여전히 ‘산 너머’가 실재하고 있었다.

머잖아 송홧가루가 노랗게 산야를 물들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은 그렇게 소나무 숲이 많지는 않다.

어쩌다 관상용으로 정원에 있는 소나무들이 앙증맞게 있는 경우도 있다. 그 많던 소나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아쉽다. 절개와 지조의 상징, 강건함의 화신인 늘 푸른 소나무는 우리 곁에서 멀어져만 가고 있다. 노란 민들레꽃(덕초)에 가득 내려앉은 늘 푸른 소나무의 노란 송홧가루, 이들의 만남은 어떻게 이리도 정열적으로 노란풍경일까?

꾀꼬리 또한 노랗다.

그 꾀꼬리소리 한 번 들으려면 조류공원에 가야 할까. 그렇다고 그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닐텐데…. 더 깊은 산속으로 가야만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 새소리마저 기억 속에서만 들려올 뿐이다.

새소리도 관념화돼가는 현실에서 ‘윤사월’은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그 옛날엔 흔히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낭랑한 꾀꼬리 소리.

이 시에서 더욱 애잔한 시절(詩節)은 ‘눈먼 처녀’이다. 눈이 먼 것은 세상을 보는 눈이 멀어서 보이질 않는다. 그러니 순수한 영혼을 가진 존재일 수밖에. 그리고 이어지는 ‘처녀’에서 순수한 영혼의 절정을 느낄 수 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예민한 반응은 순수 그 자체를 규정짓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그 처녀가 바라보는 곳을 가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봄날 고즈넉한 분위기에 한껏 도취돼 무작정 좌표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산 너머’로 가고 싶다. 기왕이면 눈먼 처녀와 함께 그곳에 가고 싶다. 그러나 그녀는 어쩌면 잃어버린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눈먼 처녀처럼 귀로 세상을 보며 살아가고 싶다.

▲ 1992년 시문학 등단 ▲ 한국문인협회 회원 ▲ (사)한국문인협회 평택지부장(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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