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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나눔의 미학

 

얼마전 조정래 작가의 소설 ‘허수아비춤’이라는 책을 읽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을 주로 써왔던 조정래 작가가 경제민주화를 주제로 집필한 이 책에는 권력층과 재벌의 비리가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기업의 비자금 조성과 전방위 로비, 편법상속 등 권력층과 재벌들의 비리와 탈법은 물론 로비를 위한 스카우트 전쟁, 로비를 성공시킨 부하직원에 대한 스톡욥션, 비자금 상납, 편법·불법 상속, 차명계좌 등 가진 자들의 파렴치한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 비자금 조성과 로비 등으로 받은 돈으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명품 시계나 가방 등을 스스럼없이 구입하는 소위 상류층의 돈놀이도 노골적으로 적시했다. 이 책은 출간 50여일 만에 18만부가 찍힐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또 지난해 한 예매 전문 사이트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자본과 분배의 원칙이 올바로 지켜지는 경제민주화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책 제목을 허수아비춤으로 정한 것은 기업 집단의 만행이 ‘허수아비춤’이 되지 않고는 세상이 인간답게 되지 않기 때문에 재벌의 행위를 허수아비춤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방송에서는 재벌의 생활을 다룬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시기에 재벌들의 화려한 생활을 소개한 방송사의 저의는 모르겠지만 재벌들의 비리를 적나라하게 파해친 소설을 읽고 난 뒤 이들 드라마를 보면서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조정래 작가가 소설에 쓴 것처럼 ‘돈은 귀신도 부린다’,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산다’, ‘돈이면 지옥문도 여닫는다’, ‘돈만 있으면 의붓자식도 효도한다’, ‘돈 있어 못난 놈 없고, 돈 없어 잘난 놈 없다’는 속담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게 다 되는 세상, 돈이 권력을 지배하고 백성을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한 편으로 생각하면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틀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돈이 없으면 당장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 있고 돈이 없으면 인간적인 대접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돈은 살아 있는 신’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돈에 영혼까지 파는 세상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이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한 부분이어야 하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을 ‘절대 신’으로 모시는 물신주의 속에 살게 된 것이다. 돈 없이는 살 수 없지만 돈에 지배받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곰곰히 생각해 봤지만 뚜렷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돈을 지나치게 많이 소유하려하기 때문에 돈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허수아비춤에는 빌 게이츠나 워랜 버핏처럼 세계적인 갑부가 자신이 가진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빌 게이츠나 워랜 버핏처럼 수십조원의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돈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나눔의 행복이 돈의 지배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것이 돈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정답이 될 순 없지만 적어도 돈 때문에 행복감을 느낄 수는 있을 것 같다.

허수아비춤을 읽고 난 뒤 매달 적은 돈이지만 내 통장에서 어려운 아동을 돕는 단체로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 새삼 자랑스럽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는 ‘나눔의 미학’, 이 것이 물질 만능주의, 물신주의 속에서 인간다움을 찾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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