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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동두천의 자존심을 찾자

 

문화예술, 충절의 혼이 담긴 동두천. 그러나 부끄러운 이름이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주둔으로 인해 짧은 기간 형성된 ‘기지촌’의 이미지가 대외적으로 너무 강해 어느 순간부터 동두천 시민들은 ‘동두천’에 살고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했고 아직도 진행중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정전 반세기가 지난 지금, 동두천의 빛나는 문화와 유산, 충절한 인물들을 잊고 스스로를 기지촌의 이미지에 가두어 놓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 볼 일이다.

동두천은 문화적 향수를 일으키는 저명한 문인과 예인, 절개 있는 선비와 충절의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 선비 정신과 유교문화를 이어 내려온 전통 있는 도시였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고려의 유신 이색이 은거하였던 왕방산, 조선시대의 명필가 시인 양사헌의 영혼이 서려있는 해룡산, 세조가 말년에 자주 찾아와 산수를 즐겼다는 칠봉산, 동두천의 진산인 마차산이 있고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개산(開山)하고 태조 이성계가 머물렀던 경기의 소금강인 소요산이 있는 고장으로 아직도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설화가 구전되고 어수정과 이태조 행궁지 등이 있는 품격의 고장이다.

 

또한 조선시대 한성판윤과 형조판서를 지낸바 있는 정사호, 예조참의를 지낸 목행선, 여진정벌과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희대의 명장 어유소 장군 등 많은 석학과 명장을 배출시킨 고장이며 손가락 단지로 아버지를 소생시킨 효자 안승덕과 소요산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시킨 김연성, 의병활동에 앞장선 김병기 등 많은 항일투사들을 배출한 충절의 고장이기도 하다.

시화에서도 지금 현존하지 않지만 동두천을 노래한 허주 정치상의 이담팔경과 안곡 이유의 초당십경은 아름다운 동두천을 노래 한 것인 만큼 이 역시 동두천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찾아야할 빛나는 유산이다.

근대에는 1958년 제1회 전국 명창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국악계에 스타로 도약한 김옥심 명창이 소리를 배운 고장이며, 한국영화계 1세대로 요절한 천재 연극인으로 불리며 <홍도야 우지마라>,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에서 홍도역을 맡았던 차홍녀의 고향도 동두천이다.

영화계에서는 차홍녀가 22살의 나이로 요절하지 않았다면 한은진, 황정순, 최은희처럼 한국영화계를 빛낸 배우로 남았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렇듯 과거 동두천 거주했던 선조들은 동두천을 예와 향, 충절과 효로 빛나는 자랑스러운 고장으로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고장의 전통을 이어 받아 선열들의 빛난 얼을 후손들 가슴에 심어주고 실천하는 일에 앞장서야 하지 않겠는가.

미군으로 인해 향락사업의 번창과 함께 ‘기지촌’ 이라는 부끄러움과 아픔이 남아있을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실체도 우리의 본모습도 아니며 동두천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더 이상의 부끄러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동두천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은 바로 지금 동두천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이제라도 잃어버린 동두천의 자존심을 찾아가는 문화 회복운동을 지금 당장 범시민운동으로 추진해 우리들의 자녀에게는 문화·교육·관광도시 동두천의 이름을 물려 줄 수 있도록 노력 할 때이다.

염필선 공무원

▲ 기획감사실 기획담당 ▲ 동두천시 전략사업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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