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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아들의 꿈

 

바람이 차다. 몇 차례 꽃샘추위가 지나가나 했는데 여전히 찬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학부형 총회가 있어 중3인 아들의 학교로 갔다.

흰 셔츠를 입은 몇몇 남학생들이 농구를 하며 유쾌한 함성으로 운동장을 울린다. 긴 겨울 동면했던 영혼들이 깨어나듯 담장 목련 작은 꽃망울 흰 빛이 봄 햇살 아래 신비롭다. 교실에서 아이의 이름표가 붙여있는 책상을 찾아 앉았다. 강당에선 이미 부모님 교육강연이 한창인지 강사목소리가 흐린 화면에 방송되고 있었다. 책상 위 분홍색 이름표에는 ‘장래 희망; 컴퓨터 프로그래머’라고 써있다. 지난 해까지는 의사라고 적혀있었는데….

잠시 시간을 거슬러 아들의 유치원 시절이 떠올랐다. “엄마, 오늘 선생님이 이 다음에 뭐가 되고싶냐고 우리한테 물어보셨거든!” “그래? 준이는 뭐라고 했는데?” “택시 기사가 되고 싶다고 했지. 왜냐면 엄마를 태우고 어디든지 가고 싶어서.” “뭐? 택시운전사? 남자가 좀 그렇네, 엄만 의사가 되면 좋겠는데.” 아직까지도 이 순간이 나에게는 후회로 남는다. “그래? 엄마 정말 신나는데 우리 아들이 세상 구경 실컷 시켜준다니 기분 최고네.” 하면서 꼬옥 한번 안아줄 걸, 그리고 나서 의사 얘기는 다음에 해도 됐을 텐데. 그 이후 아들의 꿈은 누가 물어도 의사였다. 커가며 가끔씩 ‘난 피 보는 건 싫은데.’ 혹은 한의원을 가선 ‘이런 의사는 할 수 있겠지만 약 냄새가 싫고….’ 하곤 했다.

그 뒤 수없이 아이에게 공부해라 훈계 섞인 잔소리를 할 때마다 또는 동기부여 없이 아이의 소중한 시간이 지나갈 때마다 서로 바라보는 곳이 다르다는 걸 느끼면서 그때 그 순간부터 나로 인해 뭔가 잘못 돼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에 빠진 적도 많았다.

그래도 아들은 착하고 원만한 아이로 잘 자라왔다. 생각해보면 그 어린 나이에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과 꿈을 구체적인 직업으로 그렇게 잘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 싶다.

그리고 오늘 ‘장래 희망 컴퓨터 프로그래머.’ 이제서야 엄마 뜻대로 따르려고만 했던 지나간 자신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새로운 구체적인 뜻을 세워봤는가 싶어 긴장되는 한편 그 때의 미안한 맘이 사라지는 듯했다.

화면 속의 강사는 말한다. 과거 우리 부모세대는 물질이 자원이 되는 시대였고 우리 세대는 인적자원시대이나 미래 아이들의 시대는 사회적 자본의 시대이기 때문에 관계가 중요하다. 좋은 사회적 관계는 신뢰를 바탕에 두고 있으니 신뢰를 배우는 첫 관계는 엄마부터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새롭게 자신의 꿈의 세계를 이루어나갈 아들에게 신뢰받는 엄마란 어떤 모습인가.

아빠만치 커버린 아들, 몸처럼 맘과 생각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꿈을 꾸고 실천하는 중에 좌충우돌하기도 하겠고, 더 힘든 과정이 네 앞에 있겠지. 하지만 이제부턴 널 믿고 네 가는 길에 격려와 갈채를 보낼 것이다. 엄마에겐 아들은 예나 지금이나 꿈이고 희망이기 때문이다.

겨울을 혹독히 견딘 나무들이 이제 봄볕이 만연하면 흰 목련을 시작으로 노란 개나리 분홍 진달래 붉은 장미 제각기 제 빛을 발하며 향기를 뿜어내듯, 언젠가 네 몸에 있는 빛이 차오르는 날, 아름다운 세상의 한 몫으로 당당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를 기다린다. /손유미 시인

▲ 문학세계 시부문 등단 ▲ 경기 수필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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