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세상만사] 위로가 될까?

 

커피숍이 아니고 다방이 사교장소(社交場所) 중심역할 하던 시절, 당연히 전화가 귀했다. “000교수님 계세요? 전화 받으세요” 다방 모든 손님들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교수(敎授)되시는 분, 뚜벅 뚜벅 자리에 일어나 전화 받으러 갈 때 되게 폼 났다.

구겨진 바바리, 머리가 헝클어져 있어도 역시 대학교수답다. 약간 빈(貧)티가 나야 대학교수 신분에 어울려 보였다.

그 시절에는 세끼밥, 따뜻한 잠자리가 보편적 꿈이었다. 돈과는 거리가 먼 초연한 선비 정신이 더욱 대접 받았다. 지금은 상공농사(商工農士)이지만 그땐 분명 사농공상(士農工商)이었다.

내왕이 잦았던 아파트 앞 뒷동(棟)의 집안 동생이 있었는데 근래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집안 형편 때문에 교육대학을 스스로 선택해서 초등학교 선생님 생활을 하다 대학에 편입해 영문학 박사(博士)를 얻어 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성격도 원만하고 집안 두루 자상해 칭찬이 자자하다. 오랜만에 만나 “교수가 월부(月賦)장수 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바쁘냐”고 물었더니 푸석한 얼굴로 신세타령 하는 것이었다. “학생 모집 때문에 고등학교 선생님 만나서 섭외해야지, 졸업생들 취업 때문에 회사 순례(巡禮) 해야지 죽을 맛입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라고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나 보면서 푸릇푸릇한 학생들과 잔디밭에서 담소하는 모습만 상상하면서 취미가 직업인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내 자신이 가소(可笑)롭게 느껴졌다. 옛날로 돌아가 다방 카운터로 천천히 폼 잡고 전화를 받으러 나가는 교수님들을 생각이 떠올랐다. 세월이 변함에 따라 직업의 귀천(貴賤)도 달라질 수 있구나….

대학교수란 직업에 무한한 긍지를 갖은 친구가 있다. 술자리조차 점잖다. 오죽했으면 군대에 가기 전에 친구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해서 미국의 총각파티 비슷한 것을 계획하고 위원회 비슷한 것을 구상(構想)했을까?

소식을 들은 그 친구는 위원회를 구성한 주모자에게 호되게 일갈(一喝)했다. “신성한 국방의무를 다 하려고 잠시 작별 하는 것을 세속적인 행사로 욕보이려고 하느냐.”

연꽃 이란 혼탁한 진흙 속에 피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법! 친구들은 그의 일관된 지조(志操)에 반해버렸다. 세월이 흘러 그쪽 계통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인정을 받는데 어느 날 연락이 와서 술자리에서 둘만 마주 했다.

지도교수가 들고 다니는 낡아빠진 가죽 가방이 학문의 깊이와 연륜을 풍겨 평소에 부러웠는데 독일유학 갔을 때 가방부터 샀단다. 귀국 후 버스를 탔는데(물론 친구 집에도 자가용이 있는데 부인 전용이다) 웬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청년이 “먼저 하시죠” 하더란다. 영문을 몰라 괜찮다고 했더니 “그럼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가방에서 칼을 꺼내 들더니만 “이 제품을 말씀 드리자면….” 교수는 교수다워야 하는데 남들에게 비쳐지는 모습이…. 운운(云云) 하면서 풀죽은 소리를 했다. 그 때도 다방에 앉아서 도도히 자기 생각을 떠들던 교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며칠 전 신문에 ‘가두에 범람한 실업군. 가는 곳 마다 영예로운 지식 청년 실업자, 취업이 힘들자 교수들이 제자들의 취업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겨울방학은 취직행상활동기(行商活動期) 라고 교수들은 스스로를 자조(自嘲)했다’ 자세히 보니 요즘이 아니고 1933년 사회면 기사였다. 1933년이면 지금부터 약 80년 전 이야기. 사촌동생과 친구 교수를 만나면 이 말 꼭 해야겠다. “너무 서글프게 생각 말게 역사란 이처럼 돌고 도는걸세.”

위로가 될까?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