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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경청(傾聽), 보지만 말고

 

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겨우내 닦아 놓은 하얀 지상위로 화사한 봄의 색상들이 뿌려집니다. 웅크렸던 생명들이 앞 다퉈 피어납니다. 무거운 얼음장 밑으로 숨 죽였던 물의 흐름도 경쾌한 소리로 내리 닫습니다.

노란 산수유 피어난 은하수 위로 개나리꽃, 진달래꽃이 흐릅니다. 남녘을 출발한 빨강, 파랑, 노랑꽃들의 북상길이 순결한 소년들의 소풍길 처럼 우렁찹니다. 색색 꽃들의 화려한 피어남을 따라 우리네 마음들도 덩달아 무지개처럼 피어납니다. 눈길 가는 곳마다 현란한 색들의 향연으로 세상사에 쫒긴 눈이 부끄러워집니다.

지금, 부신 눈을 조용히 감고 생명의 솟아오름을 가만히 들어봅시다. 자연의 소리, 그 웅혼한 거룩함에 어찌 살아있음에 감읍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봄의 자연이 우리에게 경청의 엄숙함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흐드러진 벚꽃들의 함성을, 너른 벌판을 박차고 오르는 아지랑이 이글거림의 소리를 조용히 들어 봅시다. 눈으로 보이는 봄의 소리를 마음속까지 깊이 마셔 봅시다. 조용히 들어 봅시다. 가만히 들어 봅시다. 그리하여 평화의 심연으로 이 봄을 경건하게 맞이합시다. 그 경건한 경청의 평화가 우리를 행복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말하여 떠들고 주장하고 있는지요. 일상에서 내가 말하고, 시퍼렇게 목청 높여 주장하는 것들이 과연 모두 그 만큼 온전하고, 바르고, 떳떳한 것들인지요. 지극히 좁고 얇은 내 생활의 편린들을 그저 즉흥적으로 가벼이 나타내는 것은 혹여 아닌지요. 남과 주위를 배려하지 않고, 타인의 생각이나 처지에 눈을 주지 않고, 그저 내 뱉어 버리는 내 이기의 파편들은 또 아닌지요.

만일 그러 하다면 나는 얼마나 건방지기 짝이 없는 이기적인 사람일까요. 내 밖의 것은 들여다보지 않고, 내 밖의 소리는 듣지도 않은 채 내 안의 것만을 내 뱉어 주장하는 행위. 그 것은 이 봄, 솟아오르는 모든 생명들의 고귀한 다양성을 인정치 않고 그저 큰소리로 바라보기만 하는 생각 없는 외눈박이의 바라봄 일 것입니다.

두렵습니다. 그 값없는 일방의 바라봄이, 떠들어댐이 주위를 얼마나 못 견디게 하고 세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세상을 살다보면 저 혼자 요란한 소리들이 결국은 얼마나 맹랑한 것인가를, 얼마나 가치 없는 허명인 것을, 얼마나 실속 없는 허망인가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경청의 미덕을 가져야겠습니다. 내 밖의 모든 소리들을 조용히 들을 수 있는 경청이야말로 일상의 다툼거리를 잠재우는 엄정한 힘입니다. 경청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먼저 나부터 한없이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끝없이 친절해야 합니다.

꽃의 소리를, 흐르는 물의 청량한 색상을 오롯이 듣기 위해서는 이기의 눈을 감아야만 합니다. 그 오롯함을 굳건히 떠 바치는 힘은 겸손과 친절이기 때문이지요. 꽃이 피었다고 그냥 바라만 보지 맙시다. 그 꽃의 소리를 들어봅시다. /김춘성 시인

▲ 한국문인협회 저작권옹호 위원 ▲ 국제펜클럽회원 ▲ 한국가톨릭문인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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