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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고등동 사람들

 

고등동을 떠난 지가 벌써 두어 해가 돼 가고 있다. 세월이 꽤 됐다. 공직자로서 두어 해 있었으니까 그리 오래 있은 건 아니다. 그것 역시 꽤 오래 됐다고 하면 오랜 시일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구대에서 파출소 전환시책으로 실험 케이스로 고등파출소가 개소했는데 내가 초대 파출소장으로 부임됐던 것이다.

직업 경찰이지만, 시(詩)도 쓰고 소설도 쓰는 문인(文人)이라는 점에서 주민들과 감성치안에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문화를 숭상하는 장소를 만들려면 문화에 조예가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혀야 적격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다른 일선 경찰관서에서는 보기 어려운 문화 공간을 크게, 또 다양한 장르의 문화 공간을 만드는데 진력했다. 그 결과 주민들의 많고, 적극적인 호응을 얻는데 성공을 했다.

떠난지가 벌써 두어 해가 됐으면 생활을 하는데 여념이 없을 주민들이 잊어버릴 법 한데 그렇지가 않았다. 떠났는데도 아직도 나를 찾아와 이런저런 일들을 의논했고, 개인적인 일상사도 상의하러 나를 찾았다.

고등동은 그리 단순한 지역이 아니었다. 한 편은 부유층이 살았고, 다른 한 쪽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살았다. 그리고 다른 한 지역은 주거지역이었으나, 다른 한 편은 유흥업이 흥행하는 지역이었다. 여기에 이주해 온 이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많은 숫자의 외국인들이 살면서 여러 가지 말썽을 부렸고 외국인 범죄마저 늘었다. 치안에 대한 많은 부담이 된 지역이었다.

한편은 치안에 골치가 아팠고, 다른 한편은 조용하고 여유있는 문화를 지향하는 곳. 말하자면 이상한 양면을 지닌 동네였다.

이런 곳에서 문화 위주로 치안을 유지하려니 치안 책임자로서 애로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주민들은 잘 협조를 해줬다. 주민자치원들과 협력단체장들과, 통장들. 아직도 연락을 잊지 않는 김주선 부녀방범대장, 그리고 자주 떡을 해다가 틈틈이 나눠주시던 총무 정영희, 한결같은 윤인복 생활안전위원장, 지금 생각해도 애잔한 그리움이 가슴을 친다. 이젠 잊어도 좋겠지만, 나도 그렇지만 그들도 나를 잊지 못한다. 사람의 정(情)이란 한번 엮이면 그리 쉽사리 풀어지지 않는 것인가 보다.

당시를 회고해 보면, 지금도 그때의 기분이 든다.

풍족히 사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을 순찰할 때면 어쩌다 점심을 거르더라도 배가 불렀고 마음이 훈훈했지만, 가난한 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지날 때면 괜히 내 마음이 아팠다. 드문드문 정부의 생활보조금으로 사는 독거노인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의 손을 잡을 때 나는 가슴이 저려 눈물을 저절로 흘리곤 했다. 자식들이 있었지만, 파지를 주워 생활을 하는 파파 할머니를 만났을 때는 나는 미안하기만 했다. 그 할머니는 전혀 찾아오지 않는 자식들이었지만 문서상 부양자가 있다는 것으로 정부의 보조 혜택도 받지 못했다. 행정적으로 그리하니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저 내가 받고 있는 월급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미안하기만 했다. 틈틈이 내가 할머니에게 찔러 넣어주는 지폐는 잠시의 위로만 될 뿐, 근본적인 도움은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는 가슴만 아팠다.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희들끼리 술을 마시고 주먹질을 했던 외국노동자들을 보게 되면 답답한 심정에 나는 내 가슴을 두들겼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가끔 만나는 그때의 고등동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삶의 희비(喜悲)를 반추해 보는 것이다. /박병두 소설가·경찰학박사 전문상담관 출강

▲ 한신대 문창과, 아주대국문학과 졸업 ▲ 원광대 박사학위 ▲ 장편소설 <그림자 밟기> ▲ 산문집 <흔들려도 당신은 꽃> ▲ 전태일 및 이육사문학상 수상 ▲ 경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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