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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다월산방(茶月山房)의 봄

 

북향, 문풍지 빗장을 열고 나를 비우러 가는 봄 날. 묵직한 빨랫감을 이고 봄볕을 따라나선 동네어귀 빨래터도 이리 설레었을까. 매주 금요일, 다월산방을 찾아가는 날은 늘 그랬다.

가슴 한 켠이 싸-하게, 작정이나 한 듯 부풀어 오르는 기대와 설렘이 중첩되는 느낌.

안성 하정다회에 있는 다실(茶室), 동·서·남 삼면으로 유리문을 만들어 낮엔 햇살을 불러 앉히고 밤이면 달님 더불어 차향을 즐긴다 하여 다월산방이라 부른다.

도래도래 내려앉은 햇살이 수반(水盤)위 산수유 노란 꽃잎을 파고들고 수줍어 비껴 앉은 다구들이 친정에 온 듯 푸근한 그곳엔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 젊음을 충전해주는 스승,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시는 여든일곱의 마음이 젊은 스승님이 계시다.

“이 나이에 뭘 또 배우니?” “이 나이에 그게 말이나 되니?”

갓 마흔 넘어서부터 ‘이 나이, 이 나이’ 타령을 하는 친구를 볼 때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얘기를 하면서도 문득 나이에 어울리는 행동의 기준이 무엇일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마음 속 생각에 따라 더디게 먹기도 하고 급하게 먹어 체하기도 하는 그 나이라는 것은 살아온 세월을 가늠하는 숫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에겐 디지털시대의 빠른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촌각을 다투며 변화해가는 유행의 속도만큼이나 생각의 퇴보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은 착각. 과연 초를 다투며 달려가는 그 변화의 속도에 편승해 함께 달리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이 나이’타령을 하며 그 자리에 안주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예순을 훌쩍 넘기고도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할 일을 찾아 다월산방에 불을 밝힌 지 이십여 년. 마음이 소박한 사람들, 차향을 그리는 사람들,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고 함께 세상을 이야기하며 한국인의 건강한 차문화(다도)에 대한 토론을 끊임없이 나누시는 여든 일곱의 선생님을 뵈면 고개가 숙여진다.

마음, 그 정신세계를 날마다 젊게 닦아가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젊음의 비결이란 생각을 해본다. 어떤 방법이든 멈추어 있지 않고 깨어 있는 마음가짐. 자기의 정서에 맞는 끊임없는 자기계발의 자세가 마음의 동안(童顔)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겉 본 안’이라 하였든가, 하루하루 삶에 휘둘려 딱지로 앉은 아린 생채기, 밀어낼 수 없어 켜켜로 떠안은 비릿한 말들을 차향에 화악 풀어 놓으면 마음부터 환하게 맑아져 얼굴 위로 고스란히 피어오른다.

함께 나누는 진솔한 말 몇 마디와 자신을 들여다보며 마음 속 스크린으로 자기 모습을 진중하게 정리해보는 몇 분 동안의 명상은 몇 년의 세월을 거뜬히 되돌려 주는 듯하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다글다글 찻물 끓는 소리가 은은한 이 곳 다월산방(茶月山房).

첫잔의 녹차향이 입 안 가득 퍼지면 “차향이 좋습니다.” “향이 참 은은합니다.”

오늘도 나는 이곳에서 화사한 봄을 충전하고 있다. /이상남 시인

▲ 독서·논술 지도사 ▲ 평택 문협 회원 ▲ 독서·논술 교육원 원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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