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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4월 하늘 우러러

 

어디선가 중간 참을 하던 봄이 4월이 되면서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왔다.

유난히 길고 추웠던 겨울을 생각하면 봄은 다시 오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긴 터널을 빠져 나오기 전에 밝은 빛이 먼저 마중을 하듯 남녘으로부터 꽃소식이 들려오더니 버들강아지가 눈을 뜨고 개동백은 별이 총총하고 목련도 겹겹이 싸여있던 뽀얀 얼굴을 망설임 없이 보여준다.

집 근처 손바닥만한 땅에서도 제 이름 하나 얻지 못한 들꽃의 귀엣말로 날이 갈수록 봄은 다투어 꽃을 선보이고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고 발길을 잡으려한다니. 정원의 꽃은 사람이 가꾸지만 들꽃은 신이 가꾼다는 말처럼 나도 들꽃을 좋아한다. 그 중에도 호젓한 산길에서 만나는 꽃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지난 해 봄 평소 가까이 지내는 분이 상을 당해 장지까지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몇몇이 편편한 자리에서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할미꽃이 피어있었다. 할미꽃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곁에 단출하게 보이는 묘지들이 있었다.

이 넓은 땅에 꽃으로 태어나 살다가기를 할미꽃은 왜 쓸쓸한 무덤가에 피는지를 생각하다 기분이 묘해졌다. 잘 가꾸어진 정원이나 고만고만한 아이들 학교 길이 아니어도 사람들 눈에 띄는 곳에 살아도 좋으련만 게다가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얼굴을 묻은 채 피는 할미꽃을 보면서 언젠가 읽은 얘기가 떠올랐다.

흔히 꽃은 세 가지로 나뉘는데 높은 나무에 피는 꽃과 키가 크지는 않지만 곧게 서서 피는 꽃과 고개를 숙이고 낮게 피는 꽃이 있는데, 높은 곳에 피는 꽃은 날짐승을 위해 피고, 서서 피는 꽃은 들짐승을 위해 피고 낮은 곳에서 고개를 숙이고 피는 꽃은 땅 속에 사는 미물을 위해 피는 꽃이라고 한다. 창조주께서는 이렇게 미물을 위해서도 꽃을 준비하셨으니 놀랍고도 감사할 일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몫은 없는데 괜히 저 혼자 좋아 싱글벙글은 아닌지. 흔히 우스개로 나이든 여자를 할미꽃이라고도 하지만 할미꽃은 나면서부터 고개를 숙이고 살다가 홀씨를 날려 보낼 때가 되어서야 허리를 편다.

언 땅속에서 물을 빨아올리고 비바람에 흔들리며 해야 할 일을 다 마친 뒤에 누리는 여유를 말해주듯 하얀 백발을 날리며 비로소 하늘을 우러르는 모습을 사람들에게서 찾는다면 어불성설일까?

누구인들 고개를 숙이고 살아가기를 바라랴. 하물며 인사를 하면서도 웃어른이나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면 먼저 고개를 숙이는데 인색하다. 물론 선거철에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자존감을 세우려는 어긋난 행동인지 모르지만 이는 겸양지덕의 외적인 표현이며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이므로 먼저 고개를 숙이는 것이 성숙한 사람이 지켜야할 예의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곧 치를 4.27 보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공약이나 부정을 두고 세상이 시끄러워 ‘섬기는 자가 다스린다’ 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정진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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