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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가족의 마법

 

지난 해 이맘때쯤, 세 식구이던 우리 집에 식구 하나가 늘었다. 외동이로 자란 딸아이가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싶다고 늘 노래를 해왔으나 그동안 엄마의 완강한 반대에 막혀 번번이 좌절되다가 대학을 졸업하더니 엄마의 의견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작정 한 마리를 데리고 들어왔던 것이다.

자기가 알아서 키울테니 걱정 말라고 큰소리치를 치며 딸아이가 막상 강아지를 집에 들여놓으니 반대하던 나로서도 속수무책이었다.

키우던 집의 사정으로 새 식구를 찾고 있던 두 살배기 강아지 ‘상구’는 그렇게 우리 가족이 됐다.

식구가 하나 늘면서 우리 집의 생활 방식이 슬금슬금 바뀌어 갔다.

강아지 양육을 책임진다던 딸아이는 실은 자기가 없을 때 엄마 혼자 외로울까봐 강아지를 데려온 거라는 무책임한 애정 표현을 남발하며 그 해 여름 공부하러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그러자 당장 상구의 저녁밥을 챙겨줄 사람이 필요해졌다. 상대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자유로운 남편이 자연스럽게 저녁밥 당번의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아지 키우는 일은 밥 주는 일로 끝이 아니었다. 온종일 집안에 혼자 갇혀 있으니 주말이면 산책이라도 시켜야 했고 산책하고 나면 목욕도 시켜줘야 했다.

개 사료와 개 샴푸와 개 간식을 선택해야 하는 새로운 과업도 생겼다. 배변판도 갈아주고 눈물 자국도 닦아주고 이빨도 닦아주고 무엇보다 퇴근 후에는 집 잘 지킨 상으로 충분한 스킨십을 해주어야만 심리적 안정을 유지했다. 식구 하나 늘어난 값을 톡톡히 치루고 있었다.

딸아이가 떠나고 두세달 동안 나는 강아지 키워줄 사람을 찾는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다. 이제 와서 새삼스레 새로운 돌봄의 의무를 지고 싶지도 져야할 필요도 없었다. 딸아이는 전화만 하면 엄마 아빠보다 상구의 안부를 먼저 물으며 절대로 다른 데 보내면 안된다고 성화를 했다.

나는 곧 더 좋은 집으로 보내버릴 거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는 사이에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로 겨울로 바뀌더니 다시 봄이 됐다. 상구가 우리 집에 온지 어느덧 1년이 된 것이다. 상구와 함께 생활한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걸 어찌 다른 집으로 보내누…. 상구가 진짜 가족이 돼 있었다.

상구를 돌보는 일이 불편한 짐, 귀찮은 일거리에서 다른 집에 나눠줄 수 없는 우리 가족의 일로 바뀐 그 감쪽같은 마법은 어디에서 왔을까를 생각해보니 답은 아주 간단했다.

함께 한 시간, 함께 한 생활 때문이었다. 상구와 함께 보낸 1년 동안 상구 때문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고 황당해서 웃고 기가 막혀서 웃었던 일들이 우리를 한 가족으로 만들었다.

굳이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았더라도 일상 속에서 공동의 기쁨과 공동의 아픔을 함께 만들고 겪어내는 과정 속에서 가족이 만들어진다.

일상 속의 기쁨이나 아픔은 대개의 경우 아주 소소한 일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 소소한 일상이 쌓여서 한 개인의 역사, 한 가족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소소한 일상이란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집안일을 하고, 함께 산책을 하고, 함께 장을 보러 가는 것처럼 특별히 추억이라고 이름붙일 것도 없는 생활 그 자체이다.

그 속에서 가족의 마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엄청난 지진 피해로 가족을 잃어버린 일본의 이재민들이 폐허 속에서 가장 많이 찾는 것도 일상의 추억이 담긴 가족의 앨범과 사진이었다고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정의 달 5월이 다가온다. 특별히 이름 붙여진 날을 위한 가족행사와 이벤트도 좋지만 이름 없는 수많은 날들을 함께 보낸 데서 오는 힘이야말로 가족을 지켜주는 마법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손영숙 가족여성연구원 성평등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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