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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창과 방패

 

초나라 때 아주 어설픈(?) 장사꾼이 창과 방패를 팔았다. 저자 거리에서 방패를 들고 “이 방패는 최고로 숙련된 장인이 만들고 재료 또한 최고급품으로 어떤 창도 뚫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떠벌리다, 창을 들고서는 “이 창은 무진장 예리함으로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앞뒤가 틀린 말을 했다. 옆에서 듣던 이 하도 기가 막혀 “여보시오, 그 창으로 그 방패를 한번 뚫어보시오” 했더니 슬그머니 사라졌단다. 여기에서 유래된 창과 방패(矛창 모, 盾방패 순)ㅡ모순(矛盾)이란 말이 태어났다. 앞과 뒤가 다른, 영어의 패러독스(역설)도 모순과 같은 과(科)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창과 방패를 단순히 공격과 수비로 역할을 풀이하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세상사 이치가 그러하듯 경우에 따라 서로 입장이 확연히 바뀔 때가 많다. 정치를 보면 여야(與野)가 바뀌고 갑(甲)이 을(乙)이 될 수 있다. 여기서 필요한 건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아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다. 그래야만 여당에서 야당이 됐을 때, 갑이 을이 됐을 때 덜 괄시받는 법이다. 평생 남에게 좋은 소리 듣고, 많은 사람에게 둘러 쌓여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래서 금과옥조(金科玉條)가 역지사지인 것이다. 대학의 등록금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란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 됐지만 학기 초 반짝하던 투쟁이 개강을 하면 사그라들었는데 올해는 수강거부와 시위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정치인들의 삭발과는 가치가 다른 ‘여자 대학생들의 삭발’ 솔직히 섬뜩하다.

뭐라해도 대학의 구성은 학생과 교수인데 최근 900 년 전부터 학생과 교수는 한 때 창과 방패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이태리의 볼로냐대학(21세기 초) 이다. 당시 이 대학에는 실력과 인격이 뛰어난 선생님 한 분이(이르네우스) 계셨다. (지금도 대입학원에 스타강사 한분만 있으면 돈벌이는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한다.) 유럽 전역에서 이 선생의 강의를 들으려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결국 수요와 공급이 맞질 않으니 집값도 뛰고 밥값도 뛰고…. 결국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한 끝에 개별적으로 항의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단체를 만들자 요즘 말로 조합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 요즘 종합대학을 가리키는 ‘유니버스티(university)’의 어원(語原)이 여기에서 유래됐다.

학생조합이 내건 조건이 재미있는데 방세를 낮출 것, 수업시간을 정확히 지킬 것, 강의를 대충하지 말 것, 마음대로 휴강하지 말 것! 요즘 교수님들 뜨끔할 분 있을 것이다. 교수들의 입장에서는 방패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다가는 앞으로 장래가 한심스러울 것 같아지자 교수들도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한 끝에 ‘우리도 조직을 만들어서 전략적으로 대항하자’. 이름하여 ‘꼴레지아(collegia)’, 지금의 종합대학인 ‘유니버스티(university)’와 단과대학을 뜻하는 ‘꼴레지아(collegia)’는 이렇게 탄생됐다. 스승의 그림자를 밟으면 안 된다는 동양적 절대가치는 어디서 찾아볼 수 없고 빵 한 조각을 탐내는 이리의 관계가 돼 버렸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는커녕 험악한 관계가 돼 버렸다. 오늘은 창이 돼 상대방을 찌르려 안달을 하고 내일은 구차스럽게 변명을 하는 입장에서 방패가 되고…. 사사건건 대립하고 사사건건 불화하고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었다고 기록돼 있다.

“꿈을 가지라고, 우리에겐 지금 꿈보다 등록금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미친 등록금의 나라에 살고 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표현하며 대학을 주식회사로 간주한다.

설마 그러하겠냐만 혹시나 900년의 역사가 거꾸로 돌아 학생과 교수 사이가 창과 방패가 될까 두렵다 두려워! /김기한 객원논설위원·前 방송인 예천천문우주센터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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