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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초대석] 道 박물관 도슨트 심영섭, 홍순권

 

심영섭 "재미·인생 담긴 눈높이해설 봉사 아닌 함께하는 즐거움"

“자원 봉사요? 남을 위한 봉사라기 보단, 나의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죠.”

심영섭(66·사진 왼쪽)씨는 9년여동안 경기도박물관 유물 해설 봉사를 하면서 오히려 자기 자신을 되찾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공무원 퇴직 후 지난 2002년, 2기 도슨트(docent)로 경기도박물관과 인연을 맺었다. 도슨트는 관람객들에게 전시물과 유물 등을 설명하는 자원봉사 안내인을 말한다.

9년여 동안 도슨트 활동에서 심 씨의 노하우는 의외로 간단했다.

‘눈높이 해설’이 심 씨가 오랫동안 도슨트 활동을 잘 할 수 있는 비결이다. 학생들의 경우 재미난 역사 이야기를 곁들여 유물들을 소개하고, 전시물 등과 얽힌 뒷이야기를 담는다.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관람객들이 찾을 때면 ‘삶’에 얽힌 이야기들을 더 중심적으로 전하게 된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아무래도 인생이야기가 더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지만, 학생들의 경우는 재미가 있어야 집중을 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도슨트 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깨우친 결과죠.”

본인 스스로가 ‘활동적’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심 씨의 활동은 왕성하다. 매주 수원 화성에서 이틀, 경기도박물관 하루, 수원문화원 부원장으로 활동하다보면 그야말로 심 씨의 일주일은 눈코 뜰 새가 없다.

이 같은 심 씨의 왕성한 활동에는 남편인 임만교(67) 씨의 무한 신뢰가 가장 큰 도움이 됐다. 심지어 임씨조차 3년 전부터 경기도박물관 도슨트로 활동하고 있다.

부부가 동시에 같은 분야에서 같은 취미를 갖게 된 셈이다. 심 씨는 부부가 같이 서울의 박물관과 전시장을 둘러보며 공부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황혼을 보낼 수 있는 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심 씨처럼 경기도박물관 부부 도슨트는 한 부부가 더 활동하고 있다.

어마한 양의 경기도박물관 전시 유물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바로 초상화였다.

“우리나라 초상화에는 특징이 있어요. 그림속의 사람이 정말 세밀하게 묘사돼 있거든요. 하지만 중국과 일본 초상화는 우리 것과 다릅니다.” 곰보나 사시, 반점 등 얼굴의 단점까지 그대로 묘사해 낸 우리나라 초상화 기법에 감탄 받았다는 심 씨는 최근 당시 복식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능행도에서 말을 탄 궁녀가 입은 흰 치마가 치마가 아니라고 소개했다. 궁녀가 치마를 입고 말을타다 보면, 펄럭이게 되고 낙마 사고도 올 수 있어 치마 위에 덧입은 바지라고 설명했다.

경기도박물관에는 현재 도슨트 34명이 활동하고 있다. 좋은 전시회에는 좋은 큐레이터가 있지만, 경기도박물관의 좋은 전시에는 34명의 도슨트가 있다.



 

홍순권 "존재했지만 잘 몰랐던 역사 이야기 꽃 피우는 일등공신"


경기도박물관에는 이야기가 있다.

역사와 그 외 다른 전시물에 대한 이야기를 도슨트들이 들려주기 때문이다.

도슨트 9년차 홍순권(74·사진 오른쪽)씨는 정조의 ‘환과고독(鰥寡孤獨)’을 이야기했다. 모두 8폭의 화성능행도에서 정조가 당시 수원 백성들을 위해 베푼 잔치연에는 부인없는 홀애비와 과부, 고아, 나이들어 홀로사는 사람들을 참석시켜 쌀, 소금, 간장 등을 베풀었다.

그저 ‘왕의 행차연’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각각의 그림에선 서로 다른 이야기가 홍씨를 통해 전해졌다.

임진왜란 후 이순신 장군과 권율 장군, 원균 장군이 각각 1등 공신에 올랐다는 이야기도 색달랐다.

평택에 거주하는 원균의 후손들이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한 문서를 토대로 18명의 무장들의 1~3등급의 공신 명단도 볼 수 있다.

“당시 전쟁에 나가 싸운 많은 장수들이 있었을텐데, 공신록에는 1~3등 공신 18명만 있습니다. 하지만 문신들은 80여명이 넘게 공신반열에 이름을 올렸죠.”

공신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 당시로선 수많은 재물과 땅, 노비가 하사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박물관 이곳 저곳을 다니며 설명하던 홍씨의 발은 진경산수화 앞에서 멈췄다.

“당시 중국의 그림과 진경산수화는 다릅니다. 상상을 그린 그림과 현실을 보고 그린 우리의 그림은 차이가 있습니다.”

홍씨의 입에선 숙종 이후부터 산수화가 그려지기 시작해 영·정조시대 꽃을 피웠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당시 그림의 대가로 알려진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의 자화상 앞에선 여러가지 이야기가 쏟아졌다.

표암선생은 김홍도의 스승이기도 하지만, 시와 그림, 글씨의 삼절(三絶)에다 비평도 출중한 인물이다. 비평이 더해지면서 사절에 이르는 인물이었다고 홍씨는 표암을 설명했다.

이 외에도 진경산수화를 발전시켰다는 이야기와 풍속화, 인물화 등에도 정평이 나있었다는 이야기도 더해졌다.

“인물화 하니까 말인데, 이쪽으로 와보세요. 중국의 초상과 우리나라의 초상 한번 보세요. 정말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초상화들은 뭔가 아우라가 있지 않나요.”

홍씨는 우리나라 초상화의 경우 한사람에 대해 세밀한 묘사를 원칙으로 하지만, 중국의 경우 가족단위로 인물보단 배경과 치장에 더 신경을 썼다는 설명을 이어갔다. 세밀한 묘사가 있기에 힘이 있고, 그 힘 속에 나오는 기운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다.

가끔 300여명씩 몰려오는 학생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어 아쉽다는 홍씨의 이야기 속에는 경기도박물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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