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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칼럼] ‘위험사회’의 우울한 자화상

 

진도 9.0의 강력한 대지진과 그로 인한 쓰나미가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이후 일본 열도와 주변의 나라들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후쿠시마 원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사능으로 인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지구상에서 유일한 핵폭격 피해국이면서 지진의 나라인 일본이 지진파에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핵발전소를 54기나 겁 없이 지어 운영하다가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져 버렸다는 것이다.

일본이 강진과 전투기의 충돌에도 절대 안전하다고 자랑하던 후쿠시마 원전의 5중 차단벽은 지진으로 촉발된 쓰나미 앞에서 맥없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역사상 가장 심각한 핵사고로 기록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건을 몇 배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후쿠시마의 6기의 원자로 중 일부가 이미 노심 융용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노심 융용이 시작되면 현재의 기술로는 방사능 유출을 막을 방법이 없어 대기와 해수를 통해 퍼져나가는 고농도 방사능은 일본 열도와 주변국뿐 만 아니라 전 세계를 지속적으로 오염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핵은 인간이 개발한 것 중 가장 위험한 물질에 속한다. 원자로를 운영하는 전력회사와 핵발전 옹호론자들은 낮은 수준의 방사선량은 위험하지 않다고 하면서 그 기준으로 병원에서 방사선 촬영 때 노출되는 방사선 수치를 예로 든다. 하지만 저선량의 방사선이 별 문제 안 된다면 병원의 방사선 기사들이 촬영 순간에 어김없이 자리를 피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세계적인 과학지 ‘네이쳐’와 예방의학자들은 한결같이 ‘안전한 수준의 방사선량이란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아무리 낮은 수준(저선량)의 방사선일지라도 맞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안전관리의 기준이 돼야 마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공적인 방사선에 노출되는 사고처럼 과학 기술과 현대 문명은 우리들에게 편리와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새로운 위험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을 가리켜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 Risk Society>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넓게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문제, 글로벌 금융위기 문제 등이 있고, 좁게는 대도시 집중화 문제, 구제역 파동 등을 들을 수 있다. 현대 기술문명의 총아라 할 만한 인터넷도 편리함을 가져다 준 반면 정보의 악의적인 유출과 그로 인한 피해와 역기능을 볼 때 ‘위험사회’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 준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이미 ‘위험사회’에 발을 들여 놓고 살아간다. 눈앞의 편리하고 달콤한 이익에 가려져 미래에 닥칠 위험을 잠깐 잊고 있거나 외면할 뿐이다. 위험사회는 이전의 소박하고 자연적인 위험과는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고 빠르게 피해를 가져오기 때문에 충분한 대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의 속편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현대문명이 가진 위험을 미리 ‘예측’(연출)함으로써 위험을 줄이고 미래사회를 발전시킬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새어 나온 방사능이 한반도로 유입될 것은 충분히 예측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건 초기에 우리 원자력 당국과 정부는 국민을 안심시킨다는 미명 하에 근거 없는 낙관론을 늘어놓으면서 위험에 대한 대처를 요청하기보다 불안감만 증폭시킨 셈이 되었다.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위험은 충분히 알려지고 가장 심각한 수준까지 예측되고 대비돼져야 한다. 외국의 전문가(기관)들이 한반도의 방사능 오염 예측치를 경고한 후에야 뒷북치듯 마지못해 인정하고 소극적인 대처 요령만 늘어놓는 식으로는 ‘위험사회’를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 일본 못지않게 원자력 발전에 크게 의존하면서 원자로를 수출상품으로까지 취급하는 나라에서 방사능 유출에 대한 대비가 이 정도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무너진 후쿠시마 원전에서 무기력한 대응으로 일관하며 손 쓸 방법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인간 군상은 일본의 현재 모습이지만, 다가 올 미래의 우리나라와 온 인류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을 하면 우울해진다. /서덕석 성남 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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