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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한계와 범위

 

부모의 자식사랑, 그 한계와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고등학교시절 가장 인기 사양(仕樣)은 키 크고, 얼굴 뿌옇고, 객쩍은 농담 잘하고, 운동 잘하고 거기다 노래까지 잘하면 모두 막역(莫逆)한 관계를 맺고 싶어 안달이 난다.

가까웠던 친구 가운데 이 같은 옵션을 골고루 갖춘 친구가 있었는데 시험을 마친 후 그의 가정교사와 나눈 대화를 소개하자면 “오늘 영어시험 쉬웠어?” “그럼요 다른 건 모두 알겠는데 ‘소메티메’가 무슨 뜻이예요?” 섬타임(sometime)을 이상하게 발음했다. ‘Thank you’는 탕크 이오유,

hope란 상표의 담배는 호페, 심지어 해골에 위험표시를 하고 영어로 danger 라고 적혀 있으면 단거라…. 이것저것 매우 맛있겠는데 하면서 입맛 다시는 흉내를 낸다. 하여간 그 친구한테는 모든 영어를 독일식(?)으로 발음했다.

유명한 레 마르크의 소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가 영화로 나왔을 때 소총 위에 철모가 쓰여 있고 배경은 도시가 불타고 있는 포스터가 거기에 붙었다. 포스터에 파리(巴里)는 한자로 쓰여 있는데 그 친구 “철모는 불타고 있다. 저 영화 재미있겠는데”하며 그 자리에 있던 여학생들 모두 킬킬 웃고 자지러졌다. 나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얼마나 창피하던지…. 그러나 그 친구 아주 태연했다.

부모님들 모두 일본유학을 갖다올 정도로 부유했다. 본인의 고백이 어릴 적부터 영어 학원 바이올린 유치원부터 학원순례하기 바빴다고 한다.

결국 일찍이 배우는데 싫증을 느꼈고 가르치는 사람의 말씀은 일찍이 귀 막아 버렸다. 집이 부유한지라 어쩌고저쩌고해서 여자 의사선생과 결혼했는데 달랑 아이하나 놓고 끝내버렸다. 요란스럽게 시작한 결혼생활이라 이혼소식도 뻑적지근 했다.

그 뒤 뚜렷한 이유도 밝히지 않고 스스로 뒤안길로 숨어버려 지금은 소식조차 알 수 없다. 결국 부모의 욕심이 자식의 장래를 망친 셈이다.

며칠 전 도하(都下)신문에 ‘시험지 빼내는 선생님들’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설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들을 특수학교 교사로 취직시키기 위해 시험지를 빼돌려서 합격을 시켰단다. 또 있다.

서울의 어느 고등학교 교장이 학교운영위원장의 아들을 위해 기말고사 시험지를 빼돌렸단다 세상에…. 교장이 시험지를 훔쳤다니…. 또 있다.

대학 입학할 때 정원 외 특별전형이란 제도 중,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기초생활수급자 특별전형이 있는데 부모가 서류상 이혼을 한 후 소득이 거의 없는 어머니와 생활하는 것처럼 꾸며 대학을 합격했단다. 참으로 대단한 자식사랑이다.

부모와 자식들 앞으로 어떻게 얼굴 마주볼까? 사람 목숨을 파리보다 하찮게 취급한 살인마 강호순. 저건 인간이 아니다. 짐승만도 못하다고 우리 모두 분노했지만 자신의 얼굴이 공개되면 하나뿐인 자식은 어떻게 사느냐면서 얼굴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식을 위해 인세수입이라도 벌겠다면서 책을 쓰겠다고 했을 때 몰염치에 치를 떨었지만, 그도 역시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한 교육철학자인 에밀이 말하길 “진정한 자식사랑이란 자식이 엇나가지 않게 큰 범위 내에서 둘레를 치고 그 안에서 자식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얼핏 듣기에는 실행이 쉬운 말을 했거늘 이번 한번만, 이번 한번만…. 이번이 마지막 하는 것이 대다수의 사람의 마음일수도 있다.

마음이야 잠시 쏠릴 수도 있지만 그 유혹을 단호히 끊는 것. 한계와 범위를 뚜렷이 하는 것도 커다란 자식사랑 이리라. 봄날 같지 않은 이 스산한 계절에 그 무던한 친구가 되게 보고 싶구나.

나이 탓일까? 날씨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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