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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불쾌한 기억 끄집어낸 ‘3색 신호등’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질서’라는 윤활제로 인해 활기차게 움직인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선다거나, 마트에서 물건 값을 치를 때나 영화관에서 입장권을 구입할 때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 마다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연출된다.

이처럼 사회 상규와 보편적 가치, 관습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질서있게 돌아간다.

곧 우리의 일상은 ‘묵시적 약속’을 행하며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통해 혼란을 줄이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박사는 ‘질서’를 외부의 힘으로 만들어진 ‘인공적 질서’와 스스로 성장한 ‘자생적 질서’로 구분했다.

또한 사회 근간을 ‘진화되고 있는 일련의 규칙체계’로 인식하고, 이를 ‘자생적 질서’라고 주창했다.

특히 하이에크는 진화하는 사회 질서를 의도적으로 바꾸거나 새롭게 설계하려는 시도는 ‘무모하고도 위험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 ‘3색 신호등’ 도입 추진과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청은 ‘빨간색-노란색-녹색 좌회전-녹색 직진’ 순서로 배치된 기존 4색 화살표 신호등을 ‘빨간색-노란색-녹색’의 3색 신호등 체제로 바꾸기로 하고 지난달 20일부터 서울, 경기 등 일부 도심지역 교차로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이 과정에서 운전자들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지적과 함께 막대한 예산낭비를 초래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80년대 구형 교통신호기를 신형으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대통령 친인척이 운영하는 업체에 공사를 몰아줌으로써 특혜 의혹이 제기됐고, 결국 ‘제5공화국 권력형 비리’ 수사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대다수 국민들 뇌리에 새겨져 있는 ‘신호등’에 대한 불쾌한 기억도 비난여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지난 6일 조현오 경찰청장은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국민 30~100명을 초청해 공청회나 토론회를 열어 여론을 수렴 하겠다”고 밝혔다.

조 청장은 “국민 여론을 들어보고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으면 시범운영 기간을 채우는 것도 잘못된 것 아니냐”며 철회 가능성과 함께 사과의 뜻을 내비쳤다.

이와 함께 3색 신호등 체계 도입에 대해서는 “3색 신호등이 설치된 교차로에서 사고가 단 한 건도 없었으며, 시범운영 교차로의 교통신호 준수율도 3색 신호등 설치 전 99.2%에서 설치 후 99.9%로 높아진데다 기존 4색 신호등을 3색으로 교체하면 연간 16억 원이 절약된다”면서 긍정적 효과를 강조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청장이 직접 여론 진화에 나선지 하루 만에 시범운영 지역에서 교통사고가 잇따라 발생해 논란을 더욱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바뀐 신호체계와 교통사고 발생과의 상관관계를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던 신호체계의 급작스런 변화로 인한 ‘인지의 혼동’이 작용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더 많은 혼란과 사고가 예견되는 측면을 감안, 경찰은 단순히 이번 사고 원인을 부정하기 보다는 ‘국민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은 새로운 정책이나 제도를 도입할 때 사전에 철저한 분석과 검증을 거치겠지만, 무엇보다 대다수 국민의 입장을 헤아리길 바란다.

인간은 다양한 행동규칙에 체화되고, 보편적 선별 과정과 결합을 통해 진화된 질서를 형성해간다.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다중의 이로움’을 위한 공동체적 방어기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교통 신호체계는 운전자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필수적인 방어 장치다. 보다 폭 넓은 여론 수렴과 함께 충분하고도 신중한 검토 과정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이경재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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