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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새마을운동 발상지는 평택이다

 

소설같은 이야기 좀 해야겠다. 이야기는 해방공간에서부터 시작된다. 55명의 칠원골 소년단은 새벽에 일제히 이어나 보건체조를 끝내고 들에 나가 보리이삭을 주웠다. 학교 갔다 돌아오는 길에도 이삭줍기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6·25가 터졌다. 아이들은 그동안 모아놓은 보리이삭을 방공호 깊숙이 숨기고 부모를 따라 피란을 갔다. 돌아와 보니 다행이도 보리는 그대로 있었다. 보리를 도정(搗精)해 보니 5말이 나왔다. 소년단은 이를 이웃마을에 장리(長利)로 놓았다. 보리쌀 5말은 이듬해 쌀 5말로 불기 시작해 10년 뒤에는 백미 20가마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이들은 어느덧 20대 청년이 돼 있었다. 청년들은 쌀 14가마를 팔아 혼례용 가마와 병풍 등을 샀다. 다시 5년 뒤 쌀이 30여 가마로 불어나자 꽃상여를 장만했다. 꽃상여가 들어오던 날, 마을에선 잔치가 벌어졌다. 가난으로 천대받던 칠원골에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1970년 4월 22일, 마침내 국가차원의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다. 칠원리는 1976년 최우수모범부락으로 선정돼 대통령표창과 새마을기(旗)를 하사받는다.

이 이야기의 배경인 칠원리는 지금의 평택시 칠원동이다. ‘칠원골 기적’의 주역인 소년단은 1948년 당시 15세였던 김기호(작고)가 단장을, 13세였던 이충웅이 총무를 맡아 결성됐다. 55명의 단원들은 ‘1. 우리는 칠원의 아들 딸 언제까지나 동리을 지키자. 2. 우리는 강철같이 단결하여 타 동리에 지지말자. 3. 우리는 칠원을 모범부락으로 만들며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부촌을 건설하자’는 ‘소년단의 맹세’를 외치며 그 약속을 지켜냈다.

1960년대 경기지역 엽연초생산조합 지도원이었던 우홍식은 이런 생각을 했다. 연초 경작농가에 기술지도를 하면서 노동력 확보를 위해서는 지붕개량이 중요하다. 마을길도 넓혀야한다. 그런 사업은 응집력이 높은 마을단위로 해야 하고 정부지원이 있어야한다고 계몽을 하고 다녔다. 1969년 평택 칠원리에서 강연을 할 때 누군가 그의 강연을 녹음해 군청에 건의를 했다. 그 후 정부 고위 관료가 그를 찾아와 아이디어를 준 공로로 연초조합 배지를 새마을기 도안으로 사용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당시 그의 강연을 녹음해 군청에 건의한 사람이 칠원리 청년단장이었던 김기호다.

알 만 한 사람은 알다시피 새마을운동 발상지를 둘러싼 논쟁은 점입가경이다.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와 경북 포항시 기계면 문성리가 서로 원조라고 다투고 있는 사이에 부산 기장군 만화동 동서부락이 발상지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1960년대 경남도지사를 지낸 양찬우가 동래군 일대에서 벌인 농촌운동이 모태라는 주장이다. 법원은 포항 문성리와 청도 신도리의 발상지 개념이 서로 다르다고 봤다. 문성리는 새마을운동이 처음 일어난 곳이란 뜻에서 ‘발상지(發祥地)’라고 주장했고, 신도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구상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발상지(發想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만화동까지 가세하고 나섰으니, 그야말로 대략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제해결의 열쇠는 의외로 간단한 곳에 있다. 경기도가 나서주면 된다. 평택 칠원동을 새마을운동의 원조 발상지로 적극 밀면 된다. 우홍식의 증언대로 김기호가 새마을운동의 아이디어를 군청에 건의했고 이것이 정부차원에서 채택됐다면 이보다 더한 물증은 없는 셈이다. 더욱이 칠원리 청년단의 역사가 1948년 결성된 소년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신도리고 문성리건 간에 비교가 안 된다. 그런데도 경기도가 우물쭈물, 차일피일 미뤄서는 안 된다. ‘평택이 영글어야 경기도가 굶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넓은 평야를 가진 평택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칠원리 아이들이 잘살아 보자며 ‘소년단의 맹세’를 외치는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감동적이다. 칠원리 뿐만이 아니다. 국민대 국사학과 김영미 교수가 쓴 책 ‘그들의 새마을운동’에서 소개된 이천시 부발읍 아미리와 장호원읍의 나래리 또한 새마을운동 훨씬 이전에 자생적으로 농촌계몽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올해부터 ‘새마을운동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경기도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무형의 자산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자칫 역사에 죄가 될 수도 있다. 경기도 차원의 면밀한 재조명을 바란다. /이해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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