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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칼럼] 일상에 숨쉬고 있는 언어의 폭력성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부천여성의전화는 2000년부터 해마다 ‘5월 가정폭력없는 평화의 달’이라는 주제로 성평등한 가족문화를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우리가 흔히 폭력하면 신체적이나 물리적인 위협을 하는 심각한 폭력을 떠올린다. 캠페인에 참여하는 시민들도 더러 ‘뭐 우리 집은 가정폭력하고 상관 없어요. 아직도 때리는 사람들이 있나요?’라고 말한다. 2010년 여성부의 전국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인 측면의 부부폭력은 53.8%이고, 이중 65세 미만 기혼여성이 남편으로부터 신체적 폭력 피해율은 15.3%로 영국(3.0% 2007년)이나 일본(3.0% 2001년)에 비해 무려 5배나 높다.

그러나 상담현장에서 만나는 가정폭력피해 내담자들의 상담내용에 따르면, 신체적폭력은 물론이고 정서적으로 혹은 폭력적 언어로 인해 받는 상처가 자신의 자존감이나 삶에 신체적 폭력 못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고 말한다. “맞아서 몸에 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흔적이라도 없어지지요. 말로 받은 상처는 평생 가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우리가 쉼이나 휴식처로 생각하고 있는 가정안에서 홧김에 혹은 무심코 내뱉는 말들이 상대의 영혼을 얼마나 갉아먹는지 생각해 봤는가?

어린이날 시장통을 지나다 5~6세쯤 보이는 아이와 부모로 보이는 젊은 부부사이를 지나가는데 ‘너 죽을래?’하는 부모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아이가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르고 아이를 달래다 참다 못한 부모가 결국 내지르는 말이 ‘너 죽을래?’였다. 물론 과한 요구를 한 아이를 어르고 달래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아 위협적으로 해결한 것이겠지만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저 아이가 자라서 누군가 특히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과 타협하고 협상하다 안 되면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착찹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당대의 사회적 인식이나 집단적 정서, 그리고 개인의 생각과 가치관을 오롯이 드러내는 과정이다. 가족안의 위계질서 속에서 드러나는 폭력적 언어 외에도 사회적으로 유행되는 말속에 드러나는 여성에 대한 표현들은 매우 선정적인 방식으로 반인권성을 드러낸다. 얼마전부터 인터넷이나 미디어에서 표현되는 말들 -‘꿀벅지’ ‘하의 실종’ ‘몸매 종결자’ ‘된장녀’- 을 보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이러한 단어들을 보면서 50대의 한 여성은 “이런 말들을 보면 마치 누군가가 내 몸을 훑어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어 끔찍하다”고 말했였다. 인터넷에서 쓰니까 남들이 쓰니까 그냥 따라 쓰는 우리의 말들이 갖는 폭력성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부천여성의전화는 지난 7일 지역에서 ‘발없는 말 천리간다’라는 주제로 우리의 일상에 드러나는 폭력적이고 성차별적인 언어들을 찾아보고 이를 평화적이고 성평등한 언어로 바꿔보자는 캠페인을 펼쳤다. 초등학생부터 노년층까지 게시물들을 꼼꼼히 살펴보기도 하고 (물론 너무나 당연한 말들을 왜 바꾸자고 하냐고 항의하신다. 누군가가 그런 말들로 상처를 받거나 차별받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시길…) 자신이 경험한 폭력적인 말들 혹은 자신도 모르게 사용했던 말들인데 다시는 쓰지 않겠다는 자기고백까지 다양한 생각들을 종이위에 남기는 모습들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가 각자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혹은 어떤 공동체에서 서로가 쓰는 말들을 함께 되돌아보고 우리의 일상에서 숨쉬고 있는 폭력적이고 성차별적인 언어들을 찾아내고 바꿔가지 약속을 한다면 사회가 좀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김수정 부천여성의전화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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