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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현칼럼] 스승이라는 굴레

 

1958년 충남 논산의 강경여고(강경고의 전신)에 다니던 노창실씨(71·여·8회졸업)는 청소년적십자(JRC. 현 RCY) 단원들에게 병석에 누워계신 선생님을 방문해 위로하고 퇴직한 은사들을 찾아뵙자고 제안한다. 전쟁 직후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등록금을 대신 내주는가 하면 몸이 아픈 기숙사생을 위해 약을 달여주고 죽을 쒀다 주시던 선생님이 편찮으시다는 말을 듣고 그동안 받은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자는 취지였다.

이러한 스승 찾아뵙기 행사가 해마다 계속되다 1963년 윤석란(13회 졸업)씨의 주도로 ‘은사의 날’을 제정할 것을 JRC 단원들이 결의, 5월 26일 첫 행사를 가졌는데 이것이 전국적으로 확산돼 1982년 스승의 날이 국가지정 기념일로 정식 선포되는 계기가 되었다.

스승의 날을 만들게 한 주인공이기에 교권침해 소식을 접할 때마다 노 씨는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낀다. 노씨가 제30회 스승의 날을 앞두고 13일 충남 논산 강경고를 찾았다. 노씨는 최근 학교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권침해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특강에서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선생님 그림자도 밟으면 안된다고 알고 그렇게 실천했다”며 “요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들으면 믿어지지가 않고 받아들이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노씨는 대전에서 약사로 활동하다 지금은 은퇴했으며 1963년 은사의 날 제정을 주도했던 윤석란 학생은 수녀(파트리시아)로서 묵묵히 인간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1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5월 15일은 제30회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가르침과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깊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스승의 은혜를 가슴 깊이 새기는 날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럴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고 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교육비리와 진보교육감 등장 이후 교육정책을 둘러싼 보혁 갈등으로 교단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침체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경기 지역의 한 고등학교 국어교사가 특정학생들의 중간고사 답안지를 고쳐 준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공교육 불신문제가 다시 부각됐다. 특히 올 들어 체벌금지가 전격 시행되면서 교권은 더 약해지고 교실 붕괴 우려가 높아진 상태다. 스승의 날을 맞아 되돌아본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수원 시내 모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새학기 시작과 함께 사물함에 개인별로 잠금장치를 설치했다. 반 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잠금장치를 풀어헤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수업시간이 되면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공부를 방해하는 모습이 목격되더니 이제는 일상화 되었다. 학급 내 장애우를 괴롭히는 일이 아무 스스럼 없이 벌어졌다. 교실분위기는 엉망이 돼 버렸다. 20대 후반의 담임선생은 통솔이 힘들다며 담임 교체를 요구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큰소리 한번 제대로 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교원 1천7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교직의 만족과 사기가 떨어졌다는 응답이 79.5%로 나타났다. 앞선 2009년과 2010년 조사 당시에 55.3%와 64.3%에서 3년 연속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것이다.

교원들은 사기가 크게 떨어진 원인으로 ‘체벌금지와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에 따른 학생에 대한 권위 상실(40.1%)’,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28.9%)’, ‘수업및 잡무 등 직무에 대한 부담’(14.9%) 등을 꼽았다. 학생 지도의 애로사항으론 ‘체벌금지 이후 학생지도력 약화(34.1%)’, ‘학부모의 지나친 간섭(19.9%)’, ‘선생님을 우습게 보는 학생태도(16.8%)’ 등이 지적됐다. 체벌금지 이후 학생은 교사의 말을 듣지 않고, 교사는 문제학생 지도를 포기하는 공교육 붕괴 현상이 이미 심각한 단계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교사의 자긍심과 권위를 살릴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교권확립은 공교육 회생의 지름길이라는 점에서 정치권을 포함한 각계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간혹 터지는 비리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참교육의 길을 가는 대다수 선생님을 부끄럽게 하고 힘 빠지게 하곤 한다. /안병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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