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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어머니와 딸

 

가정의 달 5월도 벌써 끝자락이다. 5월은 참으로 나에겐 한없이 설레는 계절이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어린이날에 불렀던 노래가사가 머릿속 턴테이블에서 아직도 재생되고 있다.

오월 중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애잔한 날은 ‘어버이날’이다. 아주 오래 전 돌아가셔서 ‘아버지, 어머니’ 하는 호칭이 낯설기만 하다. 그러나 이맘때만 되면 속으로 읊조리는 말이 있다. ‘엄마와 아버지’라고 음성적 신호를 보내면 관념 속에서는 ‘엄마와 아버지’의 빛바랜 낡은 사진이 현상된다. 그리고 고백한다. ‘사랑하고 존경한다’가 아니라 ‘죄송함’. ‘미안함’이 내 가슴 속의 이상 혈류가 흘러 부정맥으로 요동친다.

하지만 5월은 내게 특별한 사건이 있는 달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구기종목인 축구 시합을 하다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패한 것보다도 아픈 것은 무릎십자인대 파열이었다. 10여 년 전 5월 하순경이었다. 수술후유증이 보통 만만한 게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 지체불구자가 되는 거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인데, 부모님께 죄송스러웠다. 재활기간엔 프랑스월드컵이 한창이었다. 공을 차다가 심한 부상을 입었는데도 월드컵축구를 병원에서 아주 열심히 목발을 짚어가며 응원하며 시청했다.

이상하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회복속도가 더디면서 무릎의 작동범위가 매우 좁았다. 즉 각도가 나오질 않았다. 이러다간 뻗정다리 되는 것이 아닌가? 근심이 됐다. 그러면서 눈앞에 스치고 지나가는 현상은 결혼식 풍경이었다. 딸 결혼 때 부친이 딸을 데리고 걸어 들어와 신랑한테 넘겨주는 절차에서 그림은 멈추고 말았다. 나는 분명히 뻗정다리이므로 절뚝이며 걸어들어 올 것이다. 지체불구자인 나의 모습으로 무척이나 딸아이한테 미안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좀 더 지켜보자던 주치의한테 강력히 요구해 재수술을 했다. 본 수술 후, 한 달 반 만에 재수술했다. 불구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점잖게 걸으면 표시가 나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런 딸을 달포 전에 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내고 싶지는 않았으나 사회인의 입장에서는 보낼 수밖에 없었다. 취직하기 위해선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이 아닌 스펙을 쌓고 영어에 능통하기 위해 떠나는 길이라 허용했다. 출국하기 전날 밤에 딸은 따뜻한 물로 나의 발을 깨끗이 닦아주고 발마사지를 해주었다. 뜻밖이었다. 마음 한 쪽이 뿌듯하면서도 자꾸만 미안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화신이 딸아이한테 전사(轉寫)된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 보답으로 나도 미리 딸의 건강과 안녕을 기도했다.

5월은 만화방창(萬化方暢)의 계절이자 벗들과 산야로 자연구경하는 시절이다. 동시에 부모에 효경(孝敬)하고 자제를 경애(敬愛)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진춘석 시인

▲ 1992년 시문학 등단 ▲ 한국문인협회 회원 ▲ (사)한국문인협회 평택지부장(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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