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칼럼] 이혼한 노부부의 재산분할
[NGO칼럼] 이혼한 노부부의 재산분할
  • 경기신문
  • 승인 2011.06.0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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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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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경 갈등관리조정전문가
법원의 이혼과 관련한 상담이나 조정을 몇 년째 해오고 있는데 주로 젊은 부부들의 소송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젊은 부부들의 경우 대부분 자녀와 관련한 사항인데 누가, 어떻게 아이를 키울 것인가? 양육비는 어느 쪽이 얼마를 낼 것인가? 면접교섭은 어떤 형태로 할 것 인가? 등이며, 이후 귀책사유가 있는 것의 위자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재산분할과 관련한 사항 등이 중요한 쟁점으로 이야기 된다.

소송을 통해 소장이 서로에게 확인되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은 다시한번 분노와 배신을 느끼게 된다. 이 과정은 두 부부가 소통의 부재와 문제를 재판으로 정리하고자 하는 나름의 이유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헤어지더라도 품위 있게 헤어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몇 년의 짧은 경험으로는 소장 그대로를 인정하며 자기의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사실 여부에 대한 자기관점의 설명과 확대해석은 또다른 당사자에게는 일방적인 생각이라는 대답과 아울러 상대의 또 다른 치부를 드러내며 극도로 감정을 키우는 기회가 되곤 한다.

이러한 과정은 처음 재판으로 왔을 때 보다 더욱 악화된 감정을 갖고 판결을 기대하게 된다. 이 때 상담이나 조정의 개입은 접점에 다다랐던 두 당사자에게 열기를 식힐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갈등을 마무리 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제도가 만들어 지고 적극적으로 추진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회상황과 분위기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변화하는 시점의 반영이라 본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기왕에 있는 제도이고 보면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을 텐데 많은 당사자들이 모르고 있기도 하고 재판을 주관하는 판사의 판단에 의한 기회가 주어지는 측면도 있어 쟁점으로 나왔던 내용들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으로 보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부부가 함께 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화 속의 자기 틀을 결합하는 과정이며 이는 짧게는 결혼 초부터 길게는 헤어질 때 까지 서로를 떠받혀 주는 심리적, 생리적 현상의 중심에 서 있다. 초기 서로간의 문화적 충격은 집안에 내려오는 고유한 문화유산으로 존중되기도 하지만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 과정이 잘 소통되고 정리돼 부부공동체의 약속으로 무사히 지내게 된다면, 이들은 두 집안의 문화를 잘 정리해 새로운 가풍을 만들어 내는 기회를 갖는다. 대부분 법원에 오는 이들은 이 과정이 낯설고 받아들일 준비나 마음의 여유가 없어 기회를 잃은 것이기도 하다. 이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각자의 노력이 보태져야만 가능하기도 할 것이다.

얼마 전 정리된 조정당사자들은 기존의 젊은 부부들과 달리 40여년을 넘게 살아왔으며 1년 전 이혼을 했다. 칠순이 넘거나 다되어 가는 당사자를 처음 만나기도 했지만, 대게의 경우 이 정도 나이에 이혼을 한다는 것이 종종 참을 수 없는 뭔가를 말년에 정리하고자 하는 굳은 신념 같은 것이 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더구나 이혼 1년 후 재산분할을 청구한 前 남편과 이를 받아 소송에 임했던 노년의 前아내의 모습은 몹시 긴장한 탓에 초췌하기까지 했다. 요지는 ‘남편이 결혼생활 내내 외도하며 가사경제에 불성실 한 것을 들어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으며, 재산분할을 해 일정액을 주기로 하고 남편이 이혼에 동의 했으나, 약속한 위자료를 반 정도 주고 나머지는 세금 등을 내야 한다는 빌미로 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존에 받지 못했다는 재산분할의 나머지 금액이 아니라 재산을 형성하게된 본인의 노력이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하며 더 많은 금액의 분할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이미 자녀들은 모두 출가해 가정을 꾸리고 있었으며, 이 과정은 자식들에게도 치명적이어서 아들 내외의 재산상 내용들과 손주에게 주어졌던 상속 의미의 재산상 모든 부분에 압류가 붙여졌다. 헤어진 노년의 아내는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힘겨움과 성장하면서 겪었을 자녀들의 고통을 미안해 하기는 커녕 손주에게 까지 굴레를 씌웠다는 분노가 있었다. 아버지와 남편의 역할은 제대로 못해 미안하지만 아내와 자식들로부터 너무 무시 당하는 언사와 행동으로 인해 기왕 이렇게 된 것 인연을 끊겠다고 생각하며 소송을 걸었다고 했다.

두 차례에 걸친 조정에서 부부가 서로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고 들어보고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혼하면서 겪었던 오해도 사실관계를 통해 더러는 풀리기도 했다. 인생의 말년, 끊을 수 있는 부부관계는 끊어 졌으나 끊을 수 없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끊고 싶어 하는 노년의 신사에게, 새파랗게 젊은 조정가가 인생의 의미를 논하는 대목에서는 낯이 뜨거웠으나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송이 어떻게 정리되더라도 부모와 자식간의 인연은 끊는다고 끊어지는 것이 아니니 이번 기회에 서로 잘못을 인정하고 만나지는 않더라도 사과하며 화해를 해야 죽음의 눈앞에서 덜 후회스럽지 않느냐”고 했다. 받아들여지기는 했으나 남편은 소송이 모두 끊난 상태에서, 아내는 현재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칠순을 넘긴 이들에게도 힘이 들었나 보다. 40여년 이상을 함께한 부부에게도 문화적 충격은 벗어나기 어려운 과제로 인식한다는 것과 때론 수용하는 것이 얼마나 큰 미덕이었나를 새삼 깨닫게 하는 기회였다. 부디 가족은 헤어졌으나 천륜이 회복되길 비는 마음이다.

김동섭기자 ioicheer@digiwavete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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