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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건국 대통령을 욕보인 나라

 

부산 서구 부민동 임시수도 기념관 앞에 서있는 우남 이승만 건국 대통령 동상이 붉은 페인트를 뒤집어쓴 채로 발견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부정하는 누군가가 불만을 품고 저지른 동상 훼손 사건은 4·19 혁명 반세기가 흐른 지금, 건국과 호국이라는 그의 뚜렷한 업적보다 여전히 독재라는 과오가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이 사회에 남아있다는 씁쓸한 증거이기도 하다. 4·19 혁명 당시 서울 탑골공원에 있던 이 전 대통령의 동상은 시민들의 손에 의해 쇠사슬에 결박된 채 거리로 끌려다니는 수모를 당했다. 남산의 동상도 마찬가지로 끌어내려졌다.

부산시 기념물 53호인 임시수도 기념관은 1926년 지어진 2층 건물로 과거 경남지사의 관사로 활용되다 한국전쟁 당시 이전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됐다. 전쟁이 끝나자 다시 경남지사의 관사를 거쳐 경남도청의 창원 이전 이후 1984년 기념관으로 문을 열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 임시수도 기념관을 이승만 기념관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허남식 부산시장이 지난달 26일 부산시 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편집위원회에서 ‘이승만 기념관’ 개명을 언급한 데 이어 이 전(前) 대통령의 유품 전시까지 지시하자 논란이 돼 결국은 없던 일로 돼버렸다. 부산시는 5년 전에도 임시수도 기념관을 이 前(전) 대통령의 유품 중심으로 특화시켜 관광상품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반발을 샀다. 독재로 역사적 심판을 받은 대통령의 기념관과 동상을 건립한다는 것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 前(전) 대통령은 6·25전쟁 당시 부산을 임시 수도로 정하고 경남지사 공관을 부산 경무대로 삼았다. 그는 이곳에서 공산화를 막아내고 반공포로를 석방했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구상했다. 만약 그가 극도로 혼란스러웠던 광복 직후의 해방공간과 1950년대에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우고 북한의 남침을 저지해내지 못했더라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부산 앞바다에 수장(水葬)됐을지도 모른다.

일부에서는 이승만 기념관 건립 사업을 두고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반공(反共)을 국시(國是)로 하고 있는 나라에서 지난 좌파정권은 박헌영의 처 주세죽과 그녀와 재혼한 김단야, 그리고 여운형과 김철수 등 공산주의자들에게 독립운동을 이유로 건국훈장을 추서했다. 그런데도 애국지사인 이 前(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으니 이런 부조리(不條理)도 없다.

4.19 이후 제일 먼저 이승만 동상을 세운 곳은 인하대였다. ‘인하(仁荷)’라는 교명은 ‘인천’과 ‘하와이’의 머릿글자에서 따왔다. 하와이로 건너간 사탕수수 농장의 한인 노동자 중 90%가 인천 출신이었다. 이들은 자녀교육을 위해 하와이에 한인 기숙학교를 설립했는데, 그때 이 前(전) 대통령이 교장을 맡았다. 해방 후 이들이 낸 성금으로 1954년 인하대의 전신인 ‘인하공과대학’이 개교를 하고, 이런 인연으로 인하대는 1979년 2월에 이승만 동상을 세웠는데, 1983년 10월 일부 학생들에 의해 동상이 철거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래가지고서야 어찌 대한민국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이승만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건국 대통령을 욕보이는 나라라면 ‘국격(國格)’을 논할 자격조차 없다. 이 前(전) 대통령이 하야했을 때, 사저인 이화장으로 돌아가는 그에게 많은 시민들은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1965년 망명객으로 이국 땅에서 주검으로 돌아와 정동 제일교회에서 동작동 국군묘지로 운구될 때 당시 많은 국민들은 그를 애도했다. 그런 그가 세월이 지나며 오히려 분단의 원흉, 또는 사악한 독재자로 매도돼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역사에 대해 죄를 짓는 일일 수도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숭고한 피를 흘린 선열들에 대해서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이해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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