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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3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이라는 용어가 정치권에 본격 등장한 건 아마도 지난 16대 총선 전(前)이었을 것이다. 당시는 소위 ‘바꿔열풍’이 휘몰아치던 때였다. 기성 정치인들의 부패상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정치권에 새로운 피의 수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와중에 각광을 받은 게 바로 386정치인들이었다.€
386의 선두주자는 김민석 전 의원이었다.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래 최연소로 국회에 진출한 운동권 출신 386이었다. 그의 뒤를 이어 숱한 386들이 16대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무사히 국회입성에 성공한 이도 있었고, 선전했지만 아깝게 떨어진 이도 있었다.
16대 총선직후 허인회가 김대중 전 대통령 앞에서 큰절을 올리는 장면은 386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어쩌면 순진한 것일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게 했다. 국민들은 386 역시 정치적 소신보다는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권력에 아부하는 또 하나의 정치부나방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의혹을 갖게 됐던 것이다.
16대 국회 개원 후에도 386은 여전히 여론의 시험대 위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광주술판’을 시발로, 서투른 정치행보로, 김민석 전 의원의 잇단 정치적 실족으로 이래저래 386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사실 386정치인들은 태생적 한계를 노정하기도 했다. 그들은 기성정치권과의 선긋기를 시도하지도, 정치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더구나 대부분의 386들은 16대 총선 당시 독자정당 추진이나 진보진영에 투신하는 등의 정치적 실험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보수 정당의 꼭두각시 혹은 얼굴마담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근래 또 다시 386이 정치권의 화제다. 일각에서는 386전성시대를, 다른 쪽에서는 386망국론을 얘기한다. 그러나 정작 대부분의 386들은 일부 정치권386들에 불만을 표한다. 일부 정치권386들의 권력지향성이 전체 386의 세대적 진정성을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준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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