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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칼럼] 모자(母子)지간의 부양료 소송을 보며

 

이전 가사조정을 담당했던 대부분의 내용은 미성년자를 둔 이혼소송과 관련한 자녀의 양육권, 친권, 면접교섭권, 재산분할과 관련된 조정이었다면, 최근 조정을 맡게 된 사안들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문제에서, 다양한 가족구성의 범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70이 넘은 노부부의 이혼으로 재산분할이라던가, 90대의 부모와 70인 자식 간의 현금반환소송과 같은 내용에서부터, 팔순의 노모가 자녀들에게 부양료를 청구하는 부양료심판청구와 관련한 조정 등이었다.

사건을 접하면서 개인적인 느낌은 ‘가족 내의 많은 갈등이 더 이상 집안에 머무르지 않고, 가족의 손을 떠나 법의 영역으로 편입하고 있지 않나’ 하는 것과 이러한 결과들은 ‘우리사회의 압축된 성장속도가 물질적, 정신적, 심리적으로 불일치하는데서 오는 차이가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했다.

성장에 따른 기존 공동체의 해체는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가족공동체를 만들어 내기도 했으나, 기존 가족공동체 안에서 어른의 역할과 문화가 다소 모호해지고, 소통할 수 있는 내용의 부재로 인해, 점점 가족의 이해와 양보, 배려 등의 역할은 약해지는 것으로 보여 진다.

특히 부양료 청구와 관련한 조정은, 이혼소송 때와는 다른 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아직까지 우리사회에서 부양료와 관련한 내용으로 소송이 벌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보기 보다는 당사자들의 불편한 심기만큼, 이를 바라보는 주변도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자식 된 입장에서 부모를 모신다는 것과, 맞벌이 자녀들의 주변에서 손주의 돌봄, 혹은 자녀들의 집안 대소사에 대한 관리와 참여가 집안의 어른으로서 보다 자녀들이 미처 손볼 수 없는 영역을 대신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자녀들의 ‘모심’이 마냥 고맙게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노후에 제2의 삶을 실현하고 싶은 세대 간의 갈등으로 드러나고 있다.

노년의 어르신들에게는 젊은 날의 근현대사에 일어났던 역사의 고통을 고스란히 개인의 삶으로 버텨왔고, 개개인의 아픔과 슬픔, 극복의 가족사를 통해 새로운 가족의 모습들을 구성해 왔다.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으로 변화의 과정은 가족과 지역공동체에서 ‘지혜’를 구현하던 어른의 역할에서, 중요한 가치가 상실된 ‘나이 먹은 어른’ 혹은 ‘고집스런 노인’의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하며, 빠르게 변화해 가는 사회 환경에 적응하기 버거운 노년들은 무게만큼 자녀에게 기대고 싶었으리라.

가족과 관련한 상담과 조정을 하면 할수록 개인이 갖고 있는 갈등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들과 밀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단순하게는 자식이 부모를 모시지 않는다거나, 부모가 자식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이라고 보여 질수도 있으나 좀 더 확장해 보자면 노령화(노령)사회로의 진입에 따른 노령인구에 대한 사회안전망과 관련이 있고, 사회보장의 공공성과도 맞닿아 있다.

최근 우리사회의 포퓰리즘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기도 한데, 포퓰리즘 이전 노년의 인간다운 삶에 대한 열망을 상상해 보면 가야할 길이 멀고, 불과 멀지 않은 미래의 내 모습이기도 하다.

아들을 공부시키고 장가보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주장하는 어머니는 최근 십여년 친손주를 돌보며 집안일을 해왔다.

이제라도 그동안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으며 아들내외로부터 독립된 생활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세워 전세금과 생활비의 부양료를 요구하며, 죽더라도 보고 싶지 않으며, 지금의 부양료는 이후 장례비까지 보장되니 좀 더 많은 돈을 내놓기를 바란다. 이에 여럿인 누이들은 이런저런 사유로 본인들의 부양의무 보다 아들의 책임에 무게를 싫어 남동생을 질타한다.

최근 어머니를 좀 더 편히 모시려고 넓은 집을 분양 받았다는 아들부부는 ‘노인학대’를 했다는 어머니의 신고로 관련기관으로부터 여러 차례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과정이 있었다.

소통이 부재 했다는 것과 살갑게 대해 드리지 못하기는 했으나 학대라고 신고한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은 관련기관의 ‘노인학대 사실아님’의 과정에, 해도 해도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하소연 속에 더 이상 어머니에게 줄 수 있는 경제적 상황이 아니라는 것과 나만 자식인가 누이들이 남동생을 질타한 만큼 책임을 지라는 태도였다.

결국 두 번에 걸쳐 아들부부와 팔순노모를 감싸고 있는 누이들 간의 논쟁은 조정으로 정리되었다. 소송이 이뤄지는 사이 팔순의 노모는 외손주의 작업실을 전전하며 생활하고 있었고 외할머니를 대신해 소송에 임했던 20대의 외손주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일방적으로 외삼촌을 비난했던 말 대신 다양한 입장을 이해하는 기회였으면 좋으련만, 부모자식간의 의무는 조정판결로 정리가 되었으나 모자(母子)지간의 따뜻한 정(情)은 조정하지는 못했다. /김미경 갈등조정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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