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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새가 되고 싶은 날

 

예년보다 일찍 시작된 장마로 하늘은 어둡고 거리는 축축하다.

하늘이 무너지듯 천둥 소리 무섭게 한나절 내리던 장대비가 잠시 물러난 사이 저녁이 어스름 내려온다.

한층 짙어진 나무 잎새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어디선가 맑은 새소리가 들려온다. 좀처럼 듣기 힘든 녹음된 테이프(Tape)에서나 들을 법한 고음의 청량한 새의 노랫소리에 반쯤 열렸던 창을 더열었다. 그런 때가 있다.

일상이 멈춰버리는 순간,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의 굉음과 아이들이 켜놓은 텔레비전의 소음과 부엌의 분주한 부산함과 시계소리, 전화벨 소리……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몰아내고 이쪽에서 저쪽의 시공으로 옮아가는 듯, 새로운 풍경 속으로 이끌어질 때가 있다.

가슴 붉은 새 휙 지나간 길을 따라본다. 수국을 넘어 라일락 꽃 향기가 배어있을 낮은 꽃나무를 지나고 포르르 높이 날아가 가지마다 어둠을 숨겨놓은 이파리 무성한 나무에 깃든다.

여전히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 울린다. 서성인다. 보이지 않는 문가에서 위를 보다가 새의 자취를 놓친다. 나무에 살짝 몸을 기대어본다. 다시 가랑비 내린다. 길바닥 고인 물위로 그림을 그린다. 내 안의 늪에서 고인 물이 흐른다. 가벼워진다. 날아가고 싶다. 새가 되고 싶다. 앞서간 새를 좇는다. 노랫소리 청아하게 울리는 길을 따른다.

비가 오는 날 큰 베란다 창으로 밖을 보면 거대한 수족관 안에 내가 있는지 수족관 밖을 내가 보는지 묘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바로 창 가까이 있는 나뭇잎들이 꽃이 진자리 흔들며 물에 잠기고, 멀리 올려다보면 고층빌딩 위에 각이 진 하늘이 어둔 물빛을 머금고 빛을 가린 채로 떠있다.

큰비 그친 사이에 새들이 물기 털며 날아온다. 떠오는 해님보다 앞서 노래하는 새벽 새들처럼 노래한다. 빛처럼 그 주위가 환해진다.

사람들이 바쁜 걸음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비가 오기 오래 전부터 물기에 젖어온 사람들처럼 처진 어깨를 하고 연등 같은 우산을 들었다. 그 중엔 내가 아는 이도 있는 듯하다. 내가 있다. 가슴 붉은 작은 새 목청 고운 노랫소리 들린다.

비가 다시 거세진다. 맨 살에 떨어지는 물줄기를 딲으며 창을 닫는다. 주방에서 하던 일을 계속한다. 여전히 TV 소음과 부엌의 부산한 소리와 아이들 소리와 집안 곳곳에서 숨어있는 모든 것들이 내는 소리들이 빗소리와 함께 뒤섞인 채로 소란스럽다.

그런데 새 한 마리 내 가슴에 깃들었는지 노래 소리 가늘게 입가에 차오른다. 금새 미소로 얼굴에 퍼진다. 노래를 부른다.

사람들은 기쁠 때 날아오를 듯하다 하고, 슬플 땐 잠긴다는 표현을 하는 것을 어렴풋 알 것 같다. 가끔씩 내 맘이 물에 잠길 때마다 작은 붉은 새 노랫소리 휘파람처럼 부르리라.

장마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 한다. 더위와 습도를 동반하는 장마기간엔 몸이 무거워지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라 치더라도 마음은 새처럼 가볍게 날아 기쁨이라는 조율을 맞추어 놓고 볼 일이다. 비 걷힌 후 무성하게 자라날 모든 생명체들의 살아있는 환호소리 듣기 위하여.

/손유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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